[동학혁명유적지] 고창읍성(高敞邑城)
명칭 | 고창읍성(高敞邑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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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사적 제145호, 이곳은 1894년 4월 8일 동학농민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흥덕을 점령한 수천 명의 농민군이 고창읍으로 쳐들어와 관아를 공격하여 옥문을 부수고 체포되어 있던 농민군 7명을 석방하였다. |
주소 |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126 |
방문자 수 | 1686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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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불린다. 삼국시대 당시 지명인 모량현(毛良縣) 혹은 모양부리(牟陽夫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법성진성(法聖鎭城), 장성(長城)의 입암산성(立巖山城)과 이어져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로 성안에서 변산 앞바다를 내다볼 수 있다고 한다. 성곽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으나 성안의 부속 건물들이 모두 전란에 소실되었는데 1975년부터 복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조선시대 말기에 그려진 ‘모양성지도(牟陽城之圖)’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성안에 동헌(東軒), 객사(客舍), 내아(內衙) 등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이곳은 1894년 4월 8일 동학농민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흥덕을 점령한 수천 명의 농민군이 고창읍으로 쳐들어와 관아를 공격하여 옥문을 부수고 체포되어 있던 농민군 7명을 석방하였다. 이어 성안으로 들어와 군기를 탈취하고 호적 등 장적(帳籍)을 거두어 조사하고 동헌 및 각 공해(公廨)를 파괴하자 고창현감 김사준(金思準)은 도주하였다고 한다. 전봉준은 농민군들이 무고한 고창읍민들에게 폐를 끼치지 못하도록 규율을 엄하게 세웠고 억울하게 붙잡힌 죄수들을 풀어주고 굶주린 읍민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는 등 고창에서 머무는 하룻밤 동안 선정을 베풀었다.
<고창읍성 전경>
<공북루>
<고창객사>
<동헌>
<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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