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유적지] 영광관아터
명칭 | 영광관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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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조선 태조 때부터 영광관아가 있던 곳으로 현재 영광군청이 자리하고 있다. |
주소 | 영광군 영광읍 무령리 198-4 |
방문자 수 | 1558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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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때부터 영광관아가 있던 곳으로 현재 영광군청이 자리하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영광군으로 불렸고 예하에 2개의 군과 8개의 현을 거느릴 정도로 중요한 지역이었으나 조선 인조와 영조 때 이 지역 사람의 역모사건으로 두 번이나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복구되었다.
1894년 4월 12일 동학농민군 일만여 명이 영광에 도착하자 영광군수 민영수(閔泳壽)는 배에 양곡을 싣고 칠산포 앞바다로 도망쳐버렸다. 농민군은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관아로 들어가 무기고에 불을 지르고 군기를 탈취하는 한편 호적을 불태웠다. 농민군은 영광 일대에서 나흘 간 머무르면서 전열을 재정비하였는데 이 무렵 농민군의 수가 하루에도 수천 명씩 증가하였기 때문에 지도부에서는 규율을 단속하기 위하여 행동 준칙을 하달하였다. 전주성에 주둔하고 있던 경군이 농민군 진압을 위해 계속하여 남하하자, 4월 16일 농민군의 일부만 영광에 남고 나머지는 함평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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