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문(師門)유족들의 수난
포덕 13년(1872)3월 10일 신사께서 대신사의 제8회 조난향례를 지낸 후 다시 길을 떠나 인제군 남면 무매리(舞梅里)에 이르러 김병수(金秉洙)의 집을 찾으니 김병수가 태백산으로 이사하기 위하여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 신사께서 김병수와 함께 동사 ,영춘, 의풍 등지를 지나 길을 자세히 인도하여 주고 강수, 전성문 등과 함께 정선군 무은담(霧隱潭) 유인상의 집에 이르자 대신사의 딸과 세정의 처가 장춘보(張春甫)의 집에 머물러 있다가 인제옥(麟蹄獄)에 갇혔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런데 그 화(禍)를 입힌 자는 김덕중(金德仲)이라는 도인(道人)으로 이 사람이 관리(官吏)에게 알으켜 주었다 하며, 세정이 또한 5월 12일에 양양옥에서 장사(고문치사) 되고, 김덕중, 이일녀, 최혜근 등은 멀리 정배되었다. 신사께서 이러한 소식을 듣고 강수에게 말씀하기를 『도(道)를 아는 자(者) 사람의 명(命)을 말치 않을 것이나 오늘 이 소식은 실(實)로 인정(人情)에 참치 못하리라』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