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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월신사]  정선 적조암

    명칭 정선 적조암
    설명
    주소 강원 정선군 고한읍
    방문자 수 2927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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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포덕14년(1873) 10월15일 신사는 강수, 유인상 등과 함께 이곳에서 49일 기도(祈禱)를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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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백산(太白山) 독공(篤工)

    포덕 14년(1873) 10월 15일, 신사(神師)는 강수(姜洙), 유인상(劉寅常), 전성문(全聖文), 김해성(金海成) 등과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갈래사(葛來寺), 적조암(寂照庵)에 오르니 주지승(住持僧) 철수좌(哲首座)의 대우가 극진하였다. 신사께서 철수좌에게 말씀하시기를 『산중(山中)에 있어 부처님을 위하는 것이나 조용한 곳을 찾아 한울님을 위하는 것은 중이나 속인(俗人)이 다를 바 없는데 우리가 이 곳에서 공부할 것은 다만 한울님을 위하는 생각으로 주문(呪文)을 외우려는 것 뿐이오』라고 하니 철수좌가 『주문은 무슨 글입니까?』하고 물었다. 신사께서 대답하기를 『대사께서는 혹 동학이란 말을 들었습니까? 주문은 동학의 법문(法文)인데 내 주문을 소리 내어 외어도 대사께서는 싫어하지 않겠습니까?』하니 철수좌가 『좋습니다.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하므로 신사께서 이에 49일의 공부를 하는데, 철수좌가 신사의 주문 외우는 소리를 듣고 마음에 감동하여 더욱 우러러 보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포덕 15년(1874) 1월 5일은 공부를 마치는 날인데 이 날 새벽에 신사께서 강화(降話)로 다음과 같은 시(詩)를 부르며 말씀하기를 『이것은 안짝구(句)이니 후일에 바깥구(句)를 채울 자 있으리라』하였다.


    『태백산공사십구(太白山工四十九) 수아봉팔각주정(受我鳳八各主定) 천의봉상개화천(天宜峰上開花天) 금일탁마오현금(今日琢磨五絃琴) 적멸궁전탈진세(寂滅宮殿脫塵世) 선종기도칠칠기(善終祈禱七七期)』


    신사께서 다시 강수와 함께 영부(靈符)의 그림을 익히는데 필법(筆法)이 신(神)에 통하여 붓을 들어 획을 내리면 용(龍)이 구름을 토하는 듯하고 붓이 이르는 곳에 풍우(風雨)가 사해(四海)를 움직이는 듯하였다. 철수좌가 곁에서 유심히 보다가 합장배례하고 말하기를 『이것은 조화(造化)의 자취요 인작(人作)이 아닙니다.』하므로 신사께서 『대사께서도 부도(符圖)를 아십니까?』하니 철수좌가 대답하기를 『부도에 조화가 붙은 것이 아니라 필력(筆力)에 신(神)의 힘이 움직입니다. 제가 비록 견식(見識)이 없사오나 약간의 마음공부가 있는지라 조화의 자취를 마음으로 능히 증험할 수 있읍니다.』 하고 다시 말을 계속하여


    『제가 일찍 계룡산 동학사(東鶴寺)에서 수도에 힘쓴 일이 있었는데 부처님이 심령(心靈)에 나타나 말하기를 「네 소백산으로 가라」하므로 금년 4월에 소백산 부석사(浮石寺)에 이주(移住)하였더니 부처님이 또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네 다시 태백산으로 가라」하는지라 제가 이 곳에 온 첫날밤 꿈에 손님 두 사람이 부처님 앞에 나타나서 삼계(三界)의 무상(無常)한 이치와 유, 불, 선, 삼도(三道)의 진리를 도도히 설명하므로 제가 꿈 속일지라도 손님 두 사람의 모상(貌像)을 잘 보았고 깨어도 오히려 그 용모가 완연하더니 이제 두 분 선생을 뵈옵게 된 것은 전혀 부처님의 지도가 아닌가 하옵니다.』 하였다.


    이 때에 강수가 말하기를 『내 또한 이 산에 들어온 첫날 밤에 한 꿈을 얻었는데 신선이 하늘로 부터 내려와 벽을 지고 앉는지라 내 황공하여 절을 하였더니 이제 불상(佛像)을 뵈온즉 꿈 속의 신선과 흡사하니 어찌 기이(奇異)한 일이 아니리요.』하니 신사께서 말씀하기를


    『꿈인들 어찌 다 허사(虛事)겠는가. 마음이 맑은 자는 좋은 꿈을 얻고 마음이 흐린 자는 나쁜 꿈을 얻나니 꿈의 선악은 곧 그 사람의 기운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을 점치는 것이니라.』하였다. 또 웃으며 말씀하기를


    『좌중(座中)이 모두 꿈에 관한 일로 화제(話題)를 삼으니 나도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하리라. 내 또한 입산(入山)한 첫날밤에 꿈을 얻었는데 봉황이 여덟마리가 하늘로 부터 내려와 차례로 열을 지어 앉는지라 내 그중에 세 마리를 안고 옆 사람이 각각 한 마리씩을 안았더니 공중으로 부터 말이 들리기를 「이 봉황이 다섯마리는 각각 그 주인이 있으니 네 깊이 간직하였다가 주인을 기다려 맡기라」하므로 내 무슨 징조인지 알지 못하였노라.』하고 또 말씀하기를


    『대도( 大道)의 장래를 어찌 꿈으로 점치리오. 꿈도 역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요 한울도 부처도 또한 생각에서 나타나는 것인즉 한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백가지 꿈을 얻는 것보다 승(勝)한지라 천리(天理)가 어찌 다른 곳에 있으리오. 만인의 마음에 의지하여 나타나고 때에 의지하여 동(動)하는 것이니 우리들은 삼가 사람의 마음과 때의 운수를 잘 살펴 동(動)할지니라.』하였다.


    이에 철수좌가 말하기를 『신선의 도(道)나 부처의 도(道)나 모든 도(道)가 한 길로 돌아갈 것이니 선생은 더욱 자중하소서. 이제 제가 선생을 위하여 공부할 곳을 알려 드리겠사오니 행여 물리치지 마옵소서.』하고 단양군(丹陽郡) 도솔봉(兜率峰)을 말하므로 신사께서 철수좌의 호의에 대하여 감사하고 산을 내려와 정선군(旌善郡) 무은담(霧隱潭) 유인상(劉寅常)의 집으로 갔다.


    유인상이 반가히 맞아 좌정한 후에 말하기를 『대신사의 가솔이 본군(本郡) 미천리(米川里)에 이거하여 계셨는데 어제 (9일) 박씨사모(朴氏師母)가 환원(還元)하였나이다』하므로 신사께서 이 말을 듣고 한편 놀래고 한편 슬퍼하여 김계악(金啓岳)과 함께 미천리에 이르러 친히 염습(殮襲)하여 출상한 다음 2월19일에 장례를 치르니 홍순일(洪舜一), 전성문(全聖文), 유인상(劉寅常), 최진섭(崔振燮), 신석현(辛錫鉉), 박봉한(朴鳳漢), 홍석범(洪錫範), 김두원(金斗源), 홍석도(洪錫道), 유택진(劉澤鎭) 등 여러 사람이 참례하여 박씨사모의 순도(殉道)를 애석해하였다.


    이 달에 신사께서 박용걸이 단양군 영춘면(永春面) 장항리(獐項里)에 이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 곳으로 가서 설을 지냈다. 포덕 15년(1874) 1월에 신사께서 순흥(順興) 박봉한(朴鳳漢)의 집에서 철수좌의 옷 한벌을 지어가지고 2월에 적조암에 가니 철수좌가 중병(重病)으로 누워 있었으므로 문병(問病)하고 의복을 주자 눈을 들어 감사한 뜻을 표하였다. 그 이튿날에 철수좌가 입적(入寂)하였으므로 신사께서 친히 화장(火葬)하여 장례(葬禮)를 치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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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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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가용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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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부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제천IC → 38번국도(영월) → 31번국도(석항) → 중동면 → 414지방도(화방재) → 만항재 → 만항소공원 → 만항3교 → 적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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