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유적지] 무장읍성(茂長邑城)
명칭 | 무장읍성(茂長邑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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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사적 제346호, 1894년 3월 20일 동학농민군은 무장에서 기포한 다음 날 곧장 고창으로 진격하여 무장에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
주소 |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 156 |
방문자 수 | 1960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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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조선 태조 때 무송현(茂松縣)과 장사현(長沙縣)을 통합하여 무장현(茂長縣)이라 하고 성곽과 관아를 새로 건립하였다. 무송․장사의 끝 자를 따서 이름을 지은 객사 송사지관(松沙之館)과 동헌(東軒)이 남아 있다.
1894년 3월 20일 동학농민군은 무장에서 기포한 다음 날 곧장 고창으로 진격하여 무장에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당시 이 지역은 손화중(孫華中)의 본거지로서 전라도에서 동학 세력이 가장 강성하여 아전들 대부분이 동학교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격하던 농민군은 전라감영군이 진압을 위해 파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작전상 후퇴하여 4월 8일 무장에 도착하는데 이때에는 동헌과 공해(公廨), 군기고를 파괴하여 화약과 무기를 탈취하고 각종 문부와 문적들을 불태웠으며 향리 10여 명을 피살하였다. 그 사이 농민군과 동학교도 40여 명을 붙잡아 감옥에 가두는 등 동학교도를 탄압한 무장현에 대한 징벌로 보인다. 농민군은 무장읍성에서 10리 가량 떨어진 여시뫼봉에 진을 치고 3일을 머무르면서 전열을 정비하였다.
<무장읍성 전경>
<진무루>
<무장객사>
<동헌>
<무장읍성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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