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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기포 이후 동학농민군이 진격한 길을 따라 조성된 산책길로,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 구수내에서 시작되어 총 19.5Km에 달한다. 고창군이 2011년 12월에 조성하였다.
무장기포지(구수내) → 소숙재 → 무장읍성 → 무장향교 → 하마등 → 첨금정바위 → 월증마을 → 끄렁재 → 깨진바위 → 사신원 → 인천강(임낸보) → 굴치 → 사포․후포 → 목우마을
<농민군진격로 표지판>
<구수내(九水川): 물줄기가 아홉 갈래로 흐른다 하여 구수내라 한다. 이곳 모래톱에서 농민군이 군사훈련을 했다고 한다.
<무장읍성>
<무장향교>
<하마등: 고창군 무장면 교흥리의 자연 마을, 무장향교의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다 하여 하마등이라 부른다.>
<첨금정바위[沾襟亭바위]: 고창군 무장면 송현리 논밭 한 가운데 있는 기훈암(記勳巖). 충무공 이순신이 총애하던 부하 김위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입관 시 묘 앞에 있는 이 바위에 앉아 눈물로 갑옷을 적시며 애도했다고 한다.>
<월증마을: 고창군 무장면 송현리의 자연 마을. 떠오르는 달의 형체와 같다 하여 달증개라 하다가 월증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끄렁재: 고창군 아산면 학전리에서 성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큰 매화나무 뿌리(끄렁)이 있었다고 하여 끄렁재라 한다.
<깨진바위: 고창군 아산면 학전리에 있는 바위. 벼락바위라고도 불린다. 욕심 많은 한 아낙이 갓난 아들을 재물로 팔아 얻은 돈 100냥을 이 바위 아래에서 세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바위는 깨어지고 아낙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사신원(四信院):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에 있던 숙박시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으나 그 이름을 따서 사신원마을이라고 부른다. 그 동남쪽에 있는 비석마을은 사신들이 인천강을 건너는데 편리하도록 강 양쪽에 비석을 세웠던 곳이라고 한다.>
<인천강(仁川江): 고창군 성송면 판정리부터 곰소만까지 이어지는 주진천(舟津川) 중 고창천과 합류하는 지점(하갑리)부터 두월천과 합류하는 지점(계산리 비석마을)까지의 구간을 인천강이라 부른다. >
<굴치(屈峙): 고창군 부안면 용산리 굴치마을과 상등리 상굴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1893년 3월 20일 수만 명의 농민군이 굴치를 넘어 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상에 이 지역 출신 의병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서있다.>
<사포(沙浦)․후포(後浦): 고창군 흥덕면에 있는 마을이자 포구. 1894년 3월 22일 농민군이 깃발을 들고 나팔을 불며, 북을 두드리고 총을 쏘아대며 사후포(沙後浦)로 들어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목우마을: 고창군 흥덕면 신덕리의 자연마을, 사후포에서 줄포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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