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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 지역 농민들은 정읍천과 태인천 상류에 보를 막아 이 물로 농사를 지었는데 가뭄에도 풍년이 들었다 하여 만석보 또는 예동마을 앞에 있다고 하여 예동보(禮洞洑)라 불렀다. 그런데 1893년 조병갑이 고부군수로 부임해 와서 기존의 보 아래 쪽에 새로 보를 축조한다는 명목으로 농민들을 강제로 노역에 동원하였고 보가 완성된 후에는 수세로 걷은 쌀 700여석을 착복하였다. 1893년 11월부터 두 차례에 걸쳐 전봉준 등 지역대표들이 만석보의 수세를 감면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그때마다 체포되거나 쫓겨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이로 인하여 고부민중봉기가 발생하게 되었다. 만석보는 1894년 1월 고부 농민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지금은 둑을 쌓았던 흔적만 남아 있다.
1973년 만석보유지비(萬石洑遺址碑), 1987년 만석보유지정화기념비(萬石洑遺址淨化記念碑), 1999년 양성우 시인의 만석보시비(萬石洑詩碑)를 건립하였다.
<만석보유지비>
<만석보유지비>
<만석보유지정화기념비>
<만석보터 전경>
<만석보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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