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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

    [3.1운동유적지]  서대문형무소터

    명칭 서대문형무소터
    설명 민족대표 48인이 3.1운동 후 수감되신 곳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방문자 수 1200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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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천도교와 3.1독립운동 ◇

    의암성사는 3.1독립운동을 영도한 후 서대문형무소 52호 독방에 수감되었다. 평소 위장이 약하여 식후에 소화제를 복용하던 의암성사의 건강을 염려하여 주옥경(朱鈺卿) 사모님은 서대문감옥 정문앞에 간신히 초가집 방(서대문감옥에서 나온 시신을 보관하던 곳) 하나를 구하여 매일 사식을 차입하는 등 옥바라지에 정성을 다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독방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던 의암성사는 포덕 60년 11월 28일 뇌일혈(腦溢血 : 中風)을 일으켜 졸도하였다. 그런데도 판사는 병보석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오른쪽 반신불수(半身不隋)로 수족을 쓰지 못한 채 병상에 누워 있었다. 다음해 3월경 다행히 병세가 약간 호전되어 부축을 받고 조금씩 받고 조금씩 걸어 다닐 수 있게 되고 말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6월 12일에 병이 재발되어 이번에는 전신불수가 된 채 의식불명이 되었다. 형무소측에서 보석(保釋)을 하라는 통보를 받고 변호인을 통해 즉시 보석신청을 하였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총독부 의사의 진단 결과 보석이 기각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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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암상사의 병세는 전혀 차도가 없이 손발을 움직이지 못한 채 식사도 중국인 간호인이 떠넣어 주어야 했다. 그리고 손, 발, 배까지 부어오른 상태에서 포덕 61년 9월 25일 복심법원 공판에 출정하게 되었다. 이날 의암성사는 하체를 전혀 쓰지 못하기 때문에 요를 깔아놓은 들것에 누운채 법정 안으로 운반되어 들어왔다. 법단 앞에는 특별의자에 요를 깔고 몸에 누비이불을 둘러 앉힌 후 간수장(看守長)과 감옥의(監獄醫)가 좌우에서 부축하여 재판을 받았다. 이날 판사는 의암성사에게 3년 징역을 구형했다.


    그런데 10월 14일부터는 말을 전혀 못할 만큼 중태에 빠졌다. 이에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10월 22일에야 보석이 허락되어 그날 오후 동대문 밖 상춘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실로 수감된지 19개월 22일만이었다.


    한편 10월 30일에 열림 복심법원 언도공판에서 천도교측은 의암성사를 비롯한 권동진 · 오세창 · 최린 · 이종일이, 기독교측은 이승훈이, 불교측은 한용운이 가장 무거운 징역 3년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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