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향아설위법(向我設位法)
포덕 38년(1897) 1월에 신사께서 이병춘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말을 경솔히 하지 말라. 나는 수년 후에 행할 일이라도 지금부터 생각해두노라』 하였다. 2월에 신사께서 음죽군 앵산동에 이거(移居) 할 때 지목이 다시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두령임첩(頭領任帖)을 한때 중지하고 문도에게 『이제부터는 경작으로 업을 삼아 천명을 기다리라』 하였다.
이 때에 평안도 도인 홍기조, 홍기억, 임복언 등이 신사를 찾아뵈이니 신사께서 교운이 점차 북방으로 흘러감을 알고 기뻐하면서 『군등(君等)의 수련할 바는 오직 대성대천(大性大天)이요 실행할 바는 오직 성경신(誠敬信)이니 영고화복(榮枯禍福)은 흉중에 두지말라』 고 말씀하였다.
이 해 4월 5일에 신사께서 창도 기념식을 행할 때 문도에게 말씀 하시기를 『부모의 정령(精靈)은 자손에게 전(傳)하여 왔으며 선사의 정령은 제자들에게 강림되었을 것으로 믿음이 이치에 합당하도다. 그러면 내 부모를 위하거나 선사를 위하여 향례(享禮)할 때에 그 위(位)를 반드시 자아를 향하여 설(設)함이 가치 않는가. 누가 생각하든지 사후 정령이 없다면 모르지만 만일 있다고 하면 미래의 인간(人間)을 버리고 그 정령이 어디에 의거(依據)하겠느냐. 그러므로 향아설위는 직접 신인합일의 이치를 표시하는 것이며 천지만물이 내 몸에 갖추어 있는 이치를 밝힘이니라』 하고 향아설위식을 단행하였다.
이 무렵 의암 손병희는 강원도 지방을 순회하다가 여주 전거론(全巨論) 임순호의 집에 이르러 향례를 지낼 때에 스스로 느낀바 있어 역시 향아설위를 홀로 행하였다. 그 후 신사께서 이 말을 듣고 『내 어젯밤에 오만년 불역(不易)의 법을 정하였거늘 그대 또한 향아설위를 하였다고 하니 이는 실로 천심상조(相照)로다 어찌 상서(祥瑞)가 아니리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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