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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어떤 사람이 대신사에게 묻기를 『지금 선생님 문하에 출입하는 제자 중에 도를 통한 자 몇 사람이나 됩니까?』 하니 대신사께서 말씀하기를 『우리 도의 근본진리를 깨달은 자에 이르러는 우리 대에는 볼 수 없으리라. 그러나 후대에 그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후세에 우리 도중에서 요순공맹의 재(材)가 많이 나리라.』 하였다. 11월 에 최경상이 찾아와 『이후로는 생(生)의 집에 동거하심이 어떠하오리까?』 하고 선생님 모시기를 청하자 대신사께서 『나도 그럴 생각이 없지 않으나 그대의 집이 너무 좁으니 피차에 미안한 일이 아닌가?』 하고 손봉조의 집에 머무르기로 하였다. 1월 6일 대신사께서 손봉조의 집으로부터 돌아오셨다가 2월에 다시 임천(臨川) 이이방의 집에 이르러 설법하고 필법(筆法)을 지었다. 대신사께서 필법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이는 수도(修道)와 용사(用事)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니 제군은 깊이 음미하라』 하였다. 대신사께서 다시 영천, 신령 등지를 순회 설법하면서 아이들에게 글씨 쓰는 법을 가르치기도 하였고 용담에 돌아와서도 제자들에게 도법(道法)을 가르침은 물론이요 때로는 수도에 필요한 액자를 써주며 또는 글씨공부도 시켰는데 대신사의 지도를 받은 제자들은 수도의 효험이 글씨에도 나타나 단시일에 명필이 되기도 하였다. 이때에 대신사께서 도덕가를 지어 제자에게 주었는데 이 노래에는 인내천의 뜻이 밝히 담겨 있었으니 대신사께서 제자들의 도심이 점차 향상되었음을 살핀 연고였다. 이때에 대신사께서 『구미용담(龜尾龍潭) 서린상봉(瑞麟祥鳳) 수덕해명(水德海明) 성경신의(誠敬信義)』 등 문자를 즐겨 썼다. 4월에 영덕 도인 강수(姜洙)가 대신사를 찾아뵙고 수도의 절차를 물었다. 이때 대신사께서 좌잠(座箴)을 강수에게 주었다. 대신사께서 강수에게 좌잠을 준 후에 「경재(敬齋)」라는 도호를 지어주고 말씀하기를 『그대 삼가 경자(敬字)의 뜻을 잊지 말라』 하였다. 대신사께서 다시 영소(詠宵), 강시(降詩), 우음(偶吟) 등의 시구(詩句)를 지어 제자들에게 주었다.
8월 13일에 북접주인 최경상이 대신사를 찾아 뵙자 대신사께서 『추석이 멀지 않았는데 그대 어찌하여 왔느뇨.』 하니 최경상이 대답하되 『금년은 특히 선생을 모시고 추석명절을 지낼 생각이 있어 왔습니다.』 이때에 대신사께서 미리 써두었던 절구(絶句)를 내어 주었다. 대신사께서 한참 묵념하더니 좌우를 물리치고 홀로 최경상을 불러 가까이 앉으라 하고 눈을 들어 응시하더니 『그대는 수족(手足)을 마음대로 움직여 보라.』 하였다. 말이 끝나자 최경상은 갑자기 정신이 황홀해지며 말을 할 수 없고 수족을 또한 움직일 수 없었다. 대신사께서 다시 말씀하기를 『그대 어찌 함이뇨?』 하니 최경상이 그제야 비로소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정신이 전과 같게 되므로 그제야 최경상이 그 까닭을 묻자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며 내 기운이 곧 네 기운인지라, 나의 마음 먹은 바 그대에게 미침이니 이는 곧 천지만물이 오직 한 지기(至氣)로써 화생(化生)한 증거니라, 내 이 증거를 그대에게 체험케 하였으니 그대 이에 순응하라.』 고 대신사께서 말씀하였다. 『사시의 차례에 성공한 자는 가는 법이니라.』 하고 붓을 들어 「수심정기(守心正氣)」네 글자를 최경상에게 써 주면서 『이것이 그대의 장래(將來)이니 잘 간직하라.』 한 후 이어서 말씀하기를 『오늘부터는 도운(道運)이 그대에게 돌아가고 도법(道法)이 그대에게 전하여졌으니 그대 힘써 도중(道中) 모든 일을 발전시켜 나의 뜻한 바를 어기지 말라.』 하였다. 최경상이 깜짝 놀라 『이 무슨 명교(命敎)이십니까? 소자(小子)와 같은 빈약한 도력과 천박한 지식으로 감히 분에 넘치는 책임을 당하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재삼 사양하였으나 대신사께서 더욱 정색하고 기(氣)를 가다듬어 말씀하기를 『이 일은 천명(天命)에서 나왔으니 그대가 사양한들 어찌하리오.』하며 다시 서너차례나 『천명이다. 천명이다』하니 최경상이 다시 말을 더 하지 못하였다. 대신사께서 최경상을 시켜 붓을 잡으라 하고 다음과 같이 결시(訣詩)를 불렀다. 『우리 도(道)는 원래 유(儒)도 아니며 불(佛)도 아니며 선(仙)도 아니니라. 그러나 유.불.선은 천도의 한 부분이니라. 즉 유의 윤리(倫理)와 불의 각성(覺性)과 선의 양기(養氣)는 사람성(性)의 자연한 품부(品賦)이며 천도의 고유한 부분이니 우리 도는 그 무극대원(無極大源)을 잡은 자(者)라 후에 도를 용(用)하는 자(者) 이를 오해하지 말도록 지도하라』 하였다. 또 말을 이어 『한울이 오만년 무극대도로써 나에게 맡기시니 우리 도는 후천오만년의 대도니라. 나는 한울님을 아노니 한울님의 마음은 곧 나의 마음이니라. 또한 억조(億兆)의 마음이니라. 그러나 우리 도는 용사용심(用事用心)에 있어 금불문(今不聞) 고불문(古不聞)의 사(事)요 금불비(今不比) 고불비(古不比)의 법(法)이니라. 사람이 혹 이 말을 듣고 의심하는 자 있으면 이는 아직 선천의 겁회(劫灰)를 벗지 못한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니라.』 하시고 우음(偶吟) 일편을 제자들에게 내어주었다. 대신사께서 글뜻을 제자에게 물으니 강수(姜洙)가 자의(自意)로써 대답하므로 대신사께서 말씀하기를『그렇지 않으니 후일(後日)을 기다리라』하였다. 이때에 청하(淸河) 도인 이민여(李敏汝)가 조용히 수도하기 위하여 산중에 막을 치고 있다가 세상의 음해로 영문(營門)에 잡히어 정배(定配)가게 된 것을 영덕 도인들이 속죄금(贖罪金) 이백냥을 모아 영에 바치고 정배를 면하게 하였다는 소식을 대신사께서 듣고 영덕 도인들을 크게 칭찬하였다. 그리고 영덕 도인 유상호가 사방에서 찾아오는 손님 접대비에 쓰도록 돈 백냥을 대신사께 드리니 대신사께서 그 뜻을 가상히 여겼다.
「득난구난(得難求難) 실시비난(實是非難) 심화기화(心和氣和) 이대춘화(以待春和)」라는 글을 지어 북접에 전(傳)케 하니 이로부터 풍습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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