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포덕 31년(1890) 9월에 신사께서 서택순의 주선으로 청주(淸州) 금성동(金城洞)에 이거하였다. 포덕 32년(1891) 2월에 신사께서 청주 금성동으로 부터 공주(公州) 신평리(新坪里)에 이거하였는데 이때 각지(各地) 도인들이 찾아와 도를 묻는 자가 많았다.
제자들이 묻기를 『천지(天地)의 이기(理氣) 어디에 있습니까?』
하니 신사께서 대답하되 『사람의 일동일정(一動一靜)에 있나니라.』
하고 제자들에게 묻기를 『강화(降話)의 교(敎)라 함은 무엇인가?』 하니
손병희가 대답하기를 『사람의 일동일정이 곧 천(天)의 이기(理氣)라 하온즉 한울과 사람은 그 근원이 하나이니 사람이 만일 사욕(私慾)을 버리고 천심(天心)으로써 말하면 이것이 곧 천어(天語)가 될 것입니다.』하였다.
신사께서 아무 말 없이 다시 물었다. 『한울은 어데 있느냐?』
김연국이 대답하기를 『비잠동식(飛潛動植)이 다 한울의 일기(一氣)로소이다.』
신사께서 또 묵묵히 있다가 다시 말씀해 묻기를 『한울과 마음과 기운이 어떻게 구별되느냐?』
손천민이 대답하기를 『다만 지기(至氣)의 활동(活動)뿐입니다.』
신사께서 『너희는 장래(將來)가 있을 것이니 힘쓸지어다.』하고 계속하여 이렇게 말씀하였다.
『궁을(弓乙)은 우리 도(道)의 부도(符圖)니 대신사께서 각도(覺道)하실 처음에 세상사람이 다만 한울만 알고 한울이 곧 나의 마음인 것을 알지 못함을 근심하시사 궁을을 부도로 그려내어 심령(心靈)의 쉬지 않고 약동(躍動)하는 형용(形容)을 표상(表象)하여 시천주(侍天主)의 뜻을 가르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곧 상제(上帝)의 궁전(宮殿)이라 할 수 있으니 만약 상제(上帝)의 유무(有無)를 의심하거든 먼저 자기의 유무를 의심하라. 내 마음을 공경치 않는 것이 곧 천지를 공경치 않는 것이며 내 마음이 편안치 않은 것이 곧 천지가 편안치 않은 것이니 만약 사람에 있어 무엇이 불효(不孝)의 심(甚)한 것이냐 하거든 내 마음을 공경치 않는 것이 불효의 가장 큰 것이라 대답하라. 』
이 무렵 호남도인(湖南道人) 김영조(金永祚), 김낙철(金洛喆), 김낙봉(金洛封), 김낙삼(金洛三), 남계천(南啓天), 손화중(孫華中) 등 여러 사람이 신사를 찾아뵈었는데 신사께서 말씀하기를
『무극지운(無極之運)이 동방(東方)으로 시작되었고 동방을 목운(木運)이라 하니 비하여 말하면 나무가 서로 비비면 불이 생겨나 자체(自體)를 태울 것이라 그러므로 인심(人心)은 화순(和順)함에 더함이 없나니 비록 나무 허수아비를 세우고도 모든 마음이 서로 화하기만 하면 또한 감응이 있으리라. 』하였다. 이는 호남지방의 도인들이 서로 화합치 못함을 경계함이었다.
1. 좌우도편의장(左右道便義長) 남계천(南啓天)
5월에 신사께서 김연국(金演國), 장한주(張漢柱)를 데리고 옥천(沃川)을 거쳐 호남지방을 순회하실 때 태인군(泰仁郡) 김낙삼(金洛三)의 집과 부안군(扶安郡) 김낙철(金洛喆)의 집에 이르러 각각 육임첩(六任帖)을 내고 전주(全州)에 이르러서는 「관통일기정심처(貫通一氣正心處)」라는 뜻으로 도인(道人)에게 강도(講道)하고 윤상오(尹相五)의 집에 당도(當到)하였다.
당시 윤상오는 호남 우도두령(右道頭領)이요 남계천(南啓天)은 좌도두령(左道頭領)인데 피차 문벌(門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용납(容納)치 못하여 일찍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신사께서 남계천으로 호남좌우도편의장을 삼았다.
이에 호남인심(湖南人心)이 더욱 불화(不和)하여 김낙삼이 16포(包) 도인 백여 명을 거느리고 신사께 찾아와 남계천에게 복종할 수 없다고 고하자 신사께서 효유하여 말씀하기를
『들으라. 대신사께서 일찍 말씀하시되 「우리 도(道)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이요 경정포태지운(更定胞胎之運)이라」하셨으니 선천(先天)의 썩은 문벌(門閥)의 고하(高下)와 귀천(貴賤)의 등분(等分)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 그러므로 대선생께서 일찍 여비(女婢) 두 사람을 해방하여 한 사람은 양녀(養女)를 삼고 한 사람은 자부(子婦)를 삼았으니 선사(先師)의 문벌이 제군(諸君)만 못한가. 제군은 먼저 이 마음을 깨치고 자격(資格)을 따라 지휘(指揮)에 좇으라.』 하므로 김낙삼이 감히 두말 못하고 물러 갔다.
6월에 금구도인(金溝道人) 김덕명(金德明)이 여름옷 다섯 가지를 신사에게 갖다 드렸다. 10월에 신사께서 청주군(淸州郡) 금성동(金城洞)에 있을 때 어느 날 이런 꿈을 꾸었다. 즉 대신사께서 계란 5백개를 주시므로 두 손으로 받아 그 계란을 깨어보니 모두 병아리가 되어 우는데 그 중 다만 2개가 썩어 부화(孵化)되지 않았다. 신사께서 꿈을 깬 후 이상히 여겨 문도(門徒)들에게 말씀하기를
『후일 우리 도중(道中)에 성도(成道)할 사람이 마땅히 이 계란과 같으리라』하였다. 이 무렵 교도들이 시운(時運)과 인사(人事)에 대해서 질문하므로 신사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천운(天運)이 순환하여 후천오만년(後天五萬年)의 무극대도(無極大道)가 창명(創明)되었으니 선천(先天)의 유물인 세간악마(世間惡魔)를 항복받기 위하여는 삼칠자 주문을 염염불망(念念不忘)하는데 있거니와 때를 보아 나아가고 때를 보아 숨어 있고 운(運)을 타고 일어나고 도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닦고 바르게 행하여야 할 것이니 도는 성경신(誠敬信) 삼자(三字)에 있는 것이요 한울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섬겨야 할 것이니 한울은 시(侍) 정(定) 지(知) 삼자(三字)에 있는 것이니라. 세상이 점점 쇠미(衰微)하고 운수가 막히매 도(道)가 또한 희미하고 와전(訛傳)되어 도를 전하는 자 마음이 밝지 못하고 도를 닦는 자 또한 마음이 독실치 못하여 떠도는 주문(呪文)과 망녕된 말로써 난법난도(亂法亂道)를 감행하니 말이 이에 미치매 어찌 내 마음이 편할 수 있으랴. 이에 다음과 같은 임사실천 십개조(臨事實踐 十個條)를 반포하노니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성껏 지키어 어기지 말라.』
임사실천 십개조(臨事實踐 十個條)
1. 윤리를 밝히라 (明倫理)
2. 신의를 지키라 (守信義)
3. 업무에 부지런 하라 (勤業務)
4. 일에 임하여 지극히 공정하라 (臨事至公)
5. 빈궁한 사람을 서로 도와주라 (貧窮相恤)
6. 남녀간의 질서를 엄하게 분별하라 (男女嚴別)
7. 예법을 중히 여기라 (重禮法)
8. 연원을 바르게 하라 (正淵源)
9. 진리를 익히고 연구하라 (講眞理)
10. 어지럽고 복잡한 것을 금하라 (禁淆雜)
12월에 신사께서 충주군(忠州郡) 외서촌(外西村)에 이거(移居)하였는데 이때 남계천(南啓天)이 우리 도의 창명할 시기를 여쭈어보자 신사께서
『산(山)이 다 검고 길에 비단을 펼 때가 곧 그 시기니라.』
『그러면 어느 때에 그렇게 됩니까?』
『만국병마(萬國兵馬)가 우리나라 강토(疆土) 안에 왔다가 물러갈 때이니라.』 하였다. 이는 우리 도(道)의 운(運)은 세상과 같이 돌아오므로 시대(時代)가 열림에 따라 도운(道運)이 또한 커질 것을 이름이었다.
■ 찾아가는 길 |
대중교통 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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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 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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