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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월신사]  원주 송골

    명칭 원주 송골
    설명
    주소 강원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
    방문자 수 2240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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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포덕39년(1898) 2월 그믐에 여주 임학선의 주선으로 원주군 송골 원진여의 집으로 이거하였다.
    포덕39년(1898) 4월5일 낮12시경 원진여의 집에서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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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 송골마을 전경]


    1. 신사의 피체(被逮)

    포덕39년(1898)2월 그믐에 여주 임학선의 주선으로 원주군 송골 원진여의 집으로 이거하였다. 이때에 평안도 도인 나용환, 나인협, 이두형 등이 와서 찾아뵙자 신사께서 의암으로 하여금 설유하기를『내 일찍 우리 도의 운이 북에 있다고 여러번 말하였거니와 이제 제군을 보고 도운이 장차 북에 있음을 아노니 제군은 더욱 힘쓰라』하였다. 이로부터 북방에 포덕이 크게 일어났다.


    이에 앞서 수년 전에 충청도 난류(亂類) 송인경이란 자가 서울에 두류(逗留)하더니 조정에서 동학괴수를 잡으면 높은 벼슬을 준다는 말을 듣고 이에 포도대장과 비밀히 약속하고 충주지방에 이르러 농사를 지으며 비밀히 도인의 유무를 탐지 하다가 마침 동네에서 독신교인인 김만여의 처남을 만나 입도한 후에 수도범절을 극진히 하는척 하면서 주위사람들의 눈을 속여 의심받지 않게 되었다.


    그 후 송인경은 신사가 있는 곳을 염탐한 뒤 상경하여 뇌물을 주어서 시찰사가 되어 관병을 이끌고 신사를 체포하러 내려왔다. 우선 김만여의 처남과 박용대를 체포하여 앞세우고 전거론으로 갔다. 그러나 신사께서 이 곳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신사택에서 일을 보던 이치경 형제를 체포하여 고문하자 며칠 전에 염창순과 안백석이 신사 생일찬수를 지고 갔다고 하였다.


    그런데 안백석은 3월20일에 임학선이 여주에서 산 생일찬수를 전거론을 거쳐 송골로 져다준 짐꾼이었다. 즉 3월21일은 신사의 생신일 이었는데 신사께서 특히『금년 생신은 음식을 전폐할 터인즉 제군은 그리 알라』고 분부한 터이므로 공연히 생신예식은 행하지 못할지라도 제자된 도리에 그저 지낼 수 없다하여 그 이웃에 있는 도인 몇사람이 서로 의논하고 임학선을 여주시장에 보내어 리어(鯉魚)등 찬수를 사게 한 일이 있었다. 이때 임학선은 큰 리어가 든 찬수를 안백석에게 지워 송골 장석까지 가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송인경은 여주로 되돌아와 안백석을 체포 하여 장석으로 인도 하게 하였다.


    이즈음, 즉 4월3일 신사의 아들 동희(양봉)가 아이들과 놀면서 말하기를『병정이 우리 집에 들어온다』고 하었다. 신사께서 이 말을 듣고『이것은 천어라 가히 심상히 듣지 못할 소리라』하시었다. 4월4일에는 곧 의암을 비롯해서 임순호, 김연국, 손병흠, 신현경, 임도여 등이 신사를 모시고 있었는데 신사께서『군등은 각각 집으로 돌아가 향례를 지내라』고 말씀하므로 의암이『문도된 자 비록 먼곳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한 곳에 모여 예식을 거행함이 가하거늘 어찌하여 돌라가라고 명하시나이까』하고 반문하였다. 이에 신사께서『내 생각한바 있으니 명을 어기지 말라』고 말씀하므로 부득이 여러 도인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다만 임순호와 임도여만이 남아 있었다. 4월4일 밤에는 신사께서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적연히 홀로 앉아있었다.


    다음날 4월 5일 낮 12시경에 송인경은 이미 체포한 이치경 형제와 함께 경병 40~50명을 이끌고 해월신사가 계시는 송골 원진여의 집을 급습하고 끝내 신사를 체포하였다. 이 때 임순호도 함께 체포되었다.


    송인경이 신사를 포박하고 문막점(文幕店)에 이르자 도인 황영식이 스스로 나타나 이치경 형제는 아무런 죄도 없다고 하면서 자기를 체포해가라고 하므로 이치경 형제는 석방되고 대신 황영식을 체포하여 무수히 구타하였다. 이것을 보고 있던 신사께서는 큰 소리로 꾸짖어 말씀하기를『무죄한 사람을 때리는 것은 도리어 죄가 되나니 너희들은 한울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하자 그들이 감히 더 이상 행악하지 못하였다.


    신사께서는 여주까지 선편으로 와서 일단 수감되었다가 임순호는 여기서 석방되고 신사와 황영식만이 한강을 따라 서울까지 압송되었다. 신사께서 수감되어 있는 동안 성사와 김연국. 홍병기 등은 비밀히 바깥일을 주시하였고 이종훈은 교졸 김준식을 사귀어 형제의 의를 맺고 의복과 음식을 비밀히 차입하였다. 이때 성사께서 이종훈.박인호와 이문제를 상의하였더니 박인호는 다시 관내접주 김명부와 상의하여 홍주도인 김주열이 청전(靑田) 10두락을 팔아 신사의 옥바라지 비용에 충당케 하였다.


    신사께서는 옥중에서 다른 죄수들이 기한(飢寒)에 허덕이는 것을 보고 측은히 생각하여 이종훈에게 돈 50냥을 차입하도록 한 후 죄수들에게 여러차례 음식을 나누어주었고, 비록 병이 위중하였으나 송주를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또한 글을 써서 이종훈에게 전하여 문도들에게 안심수도 하라는 훈사를 내리고 말씀하기를『나의 이번일을 다 천명이니 제군은 낙심하지말고 오만년 대운을 정성으로 지키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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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골마을 원진여의 집]



    ■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이용

    ::원주시청→문화관광→여행가이드→교통정보 홈페이지 참조→원주도착→71번 시내버스이용 송골정류소 하차
    ::71번 시외버스 주요 경유지:관설동종점.단구소방파출소.남부시장.원주역.시외버스터미널.태장2동.(고산·샘골·동막·선바위)[배차간격:60분]
    자가용 이용


    ::중앙고속국도→북원주IC→옹산교방향우회전→옹산교→지촌교→고산교→추모비있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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