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포덕26년(1885) 3월 10일 신사께서 대신사순도향례식(大神師殉道享禮式)을 마치고 『여(余) 차(此)에 거(居)한지 12년이라 기간(其間)에 행(幸)히 천사권고(天師眷顧)의 대덕(大德)을 몽(蒙)하여 무사과래(無事過來)한지라 지금에 대신사의 현령(顯靈)으로 둔적(遁跡)의 명(命)을 수(受)하였으니 미구(未久)에 화(禍)가 지(至)할지라 제군은 신(愼)하라』하여 지목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 제자들에게 주의토록 하였다.
신사께서 5월에 보은장내(報恩帳內)로 이거(移居)하였다. 이 해 6월에 충청도 관찰사(觀察使) 심상훈(沈相薰)과 단양군수 최희진(崔喜鎭)이 동모(同謀)하여 신사를 체포코자 비밀히 관군을 동원하여 많은 도인들을 체포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강시원(姜時元), 이경교(李敬敎), 김성집(金成集)과 같은 지도급 교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급보(急報)를 들은 후 3일간 보은장내에 피신하였다가 대신사의 영교(靈敎)를 받고 가사(家事)를 김연국에게 맡긴 다음 젊은 제자 장한주(蔣漢柱)만을 데리고 공주 마곡리(麻谷里)에 이르러 화를 피하였다. 그러나 마곡리에서도 오래 머물 형편이 못되어 7월에 신사께서 비밀히 보은장내로 돌아와서 김연국, 장한주를 데리고 다시 영천군(永川郡) 화계동(花溪洞)에 들어가 초막을 치고 숨어 있었다. 관에 잡혀갔던 강시원은 8월에 석방되었다.
■ 찾아가는 길 |
대중교통 이용 |
| ||
자가용 이용 |
| ||
-- 보은군청 문화관광포털로 바로가기 --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