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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암성사]  예천 용문사

    명칭 예천 용문사
    설명 선사(先師)의 유훈(遺訓)
    주소 경북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방문자 수 2759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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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의암성사의 도력 ◇

    1. 선사(先師)의 유훈(遺訓)


    신사의 장례를 마치고 여러 두목들이 모여 선후책을 논의하게 되었다. 이때 손천민과 김연국이 『선생이 이미 형을 받았으니 우리들이 어찌 구구히 살기를 도모하리오. 스승을 좇아 순도함이 가하다』 고 말하자 성사께서 『말은 비록 의에 합당하나 이것은 한 열사의 할 일이요 대도의 책임을 진 자의 말이 아니니 나는 도리어 생을 도모하여 스승의 은혜를 갚고자 하노라』 하였다.


    성사께서 손병흠·김연국·신응식·김성도·이용한 등과 함께 광주 이수진(두뭇개)에 이르자 병정 5·6인이 도박판을 벌이고 행인을 검색하고 있었다. 성사께서 일부러 병정이 주재하고 있는 여숙에 점심을 시킨 후 같이 도박을 하자고 청하자 즉석에서 허락하므로 두어 번 내기를 걸었더니 가지고 있던 돈이 한 푼도 없이 빼앗겼다. 그러자 성사께서 미리 약속했던대로 신응식·이용한에게 명하여 병정을 결박하라 하자 병정들이 그제야 암행검찰인줄 알고 다 도망하고 한 사람만 잡혔다. 성사께서 천천히 점심을 마치고 병정에게 크게 꾸짖기를 『너희들의 책임은 동학군을 잡으라 함이어늘 이제 도박장을 벌이고 행인의 돈을 빼앗으니 군률에 의하여 처치함이 가하다』 고 하자 병정이 애걸하며 용서를 구하므로 성사께서 후일을 위하여 그냥 돌려보냈다.


    성사께서 길을 떠나 고개마루에 이르자 문득 강개무량(慷慨無量)한 회포를 금치 못하여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 선생을 모신지 수십년에 아무 성공이 없고 이제 선생을 참형의 중에서 영결(永訣)하고 홀로 돌아오게 되니 어찌 천지가 부끄럽지 아니하리오. 내 이제로부터 산중에서 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생각을 한참동안 계속하다가 맹연(猛然)히 반성자책하여 자문자답하기를 『내 실로 선사의 죄인이로다. 내 선사에게 받은 바 유훈이 소소하거늘 이제 몸으로써 국궁진췌하다가 도에 희생함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불출산외를 생각하니 이는 천지간 죄인이라』 하고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의 시를 불렀다.

     
    『좌간강산도 무연포복중 약토우주간 천하공포복 천인수수지 수덕최가명 성령현세 창창복속』
    (坐看江山圖 茂然胞腹中 若吐宇宙間 天下共飽腹 天人授受地 水德最佳明 性靈顯世 蒼蒼復續)


    성사께서 새로 정신을 가다듬어 이성운의 집에서 20여일을 머물 때에 홍병기가 찾아왔다.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지금 조용한 곳을 택하여 잠시 정양하고 또한 도인의 향배를 살피고자 하노라』 고 하였다. 이어 박인호가 찾아와 뵈었는데 성사께서 각지 도인의 향배여하를 묻자 박인호가 대답하기를 『조금도 해이함이 없고 지성으로 도를 닦더이다』 하였다. 성사께서 『내 이제 대도의 책임을 진지라 우리 도로 하여금 장래 세계에 창명코자 할진대 반드시 지성으로 수련하여 황연히 그 이치를 대각한 후에야 가히 써 사람을 가르칠 것이요 또한 도문을 크게 열 것이라』 하고 깊숙한 곳에 있으면서 깊이 생각한지 여러 달이 되자 각지 도인이 점차 내알(來謁)하게 되었다.

     
    이 무렵 이병춘이 성사를 찾아뵙고 말하기를 『인황씨(人皇氏)는 사람을 살리소서』 하므로 자리에 있던 여러 두령이 이상히 생각하였다. 이보다 앞서 성사께서 모든 두령과 더불어 천황·지황·인황의 뜻으로 문자를 도중에 발포코자 하다가 생각한 바 있어 『일후에 삼황의 말을 자연 발설할 사람이 있을 것이니 그때를 기다리라』 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과연 그것이 적중하였다.

     
    이때에 성사댁에 양미가 떨어져서 가족이 근심하는 중에 또한 손님마저 찾아오므로 성사께서 말씀하기를 『불원간에 양미를 가져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솥을 씻어놓고 기다리라』 고 하더니 과연 음죽도인 박용팔이 쌀 서말을 지고 왔다. 성사께서 뇌후종으로 기거가 곤란할 때 모시고 있던 사람이 의사를 부르려고 하자 성사께서 『내 오만년대도로써 책임을 삼은지라 생사가 한울에 있거늘 어찌 의약을 쓰리오』 라고 말씀하더니 이날 밤에 종처(腫處)가 터져 수일 후에 완쾌되었다.


    8월에 성사께서 당진군 서동에 이거하여 천동지정(天動地靜)한다는 옛말을 부인하고 대지자동(大地自動)한다고 말한 다음 그 이치를 도인에게 말씀하였다. 성사댁 문전에 한 마른 샘이 있어 낙엽이 덮여 있었는데 성사께서 손수 그 낙엽을 소제하자 옥수가 솟아나와 동내 30여 가구의 식수가 유족(裕足)하였다. 이 무렵 성사의 사위 이관영이 부족증(不足症)으로 고생하는지라 성사께서 주문과 안수(按手)로써 이를 쾌유케 하였다.


    포덕40년(1899) 4월에 성사께서 박인호에게 『춘암(春菴)』 이라는 도호를 내렸다. 그리고 이 해 7월에 성사께서 『각세진경(覺世眞經)』 을 지었다.


    12월에 성사께서 정산군 두치(斗峙,말치)에 이거하였는데 대개 이 땅은 식수가 매우 멀고 물맛이 좋지 않아 청수를 모실 때에 항상 불편하고 불쾌한 생각이 있어 하루는 집 뒤의 땅을 팠더니 반석 밑에서 좋은 샘물이 솟아나 불편이 없게 되었다. 이 무렵 해월신사의 손씨부인이 환원하여 성사께서 예를 갖추어 정산군 두치(斗峙)(청양군 정산면 마치리 말치)에 장례를 지냈다. (포덕120년 11월15일에 다시 화장하였음)
    12월에 성사께서 『수수명실록(授受明實錄)』 을 지었다.


    2. 경자 설법(庚子 說法)

    포덕41년(경자) 4월 23일에 성사께서 입도문을 다음과 같이 제정하였다.

    입 도 문

    용담수운대선생주 (龍潭水雲大先生主)
    무극대도대덕무위화기영 시포덕(无極大道大德無爲化氣永 侍布德)
    검악해월선생주(劍岳海月先生主)
    무극대도대덕무위화기영 정포덕(无極大道大德無爲化氣永 定布德)
    북접대도주(北接大道主)
    무극대도대덕무위화기영 지봉명성심전수(无極大道無爲化氣永 知奉命聖心傳授)
    무극대도대덕무위화기봉명봉수(无極大道大德無爲化氣奉命奉受)

    ○○○년 ○월 ○일

    이 해(1899) 5월 1일에 성사께서 신사의 분묘를 여주군 금사면 주녹리 천덕산으로 이장하였다. 이때에 박인호·손병흠·손천민·이종훈·홍병기·김명배·이용구 등이 참석하고 김연국만이 불참하였기 때문에 사람을 보내어 불러 온 후 성사께서 김연국에게 이르기를 『신사께서 순도하실 때에 우리들이 스승을 따라 죽지 못한 것은 구차히 육신을 위함이 아니요 대도의 장래를 위한 것이니 우리들의 책임이 과연 얼마나 중대한가를 알 것이오. 신사 재세시에 도통연원으로써 불초한 나에게 부탁하여 말씀하시기를『이는 사의(私意)가 아니라 천명(天命)에서 나온 것이라』하였으며, 신사 또 제군에게 말씀하시기를『3인이 비록 일을 볼지라도 주장이 없지 못할지니 내 의암(義菴)으로써 주장(主張)을 삼노라』하시었나니 신사의 명교는 구암과 나뿐이 아니요 동석한 여러 사람이 한가지로 들었는지라 구암은 반드시 다른 뜻이 없을 줄로 아나 그러나 그밖에 모든 도유는 생각컨대 반드시 알지 못하였으리니 이제 각지 두목을 모아놓고 양위신사의 신위를 설한 후에 신사의 영험으로 고쳐 종통연원(宗統淵原)을 정함이 가하다』 말하고 이어 설법기일을 5월 27일로 정하였다.

     
    그 날에 각지 두목이 모두 모였는데 오직 김연국이 오지 않으므로 여러 사람이 김연국의 신의 없음을 토론코자 하자 성사께서 이를 제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 장차 김연국을 효유하여 천심이 감발케 하리라』 하였다. 이때 설법의 기일을 다시 연기하여 7월 20일로 정하고 6월 2일에 신사의 순도 2주기 향사(享祀)를 봉행할 때 신사께서 김연국을 청하여 참례케하고 전일에 신의(信義) 어긴 것을 말씀하며 또 후일에 설법할 것으로 효유하니 김연국이 감동하는 빛이 있었다.


    7월 20일에 풍기현에서 설법식을 행할 때 손천민·김연국·박인호·이용구·손병흠·이종훈·홍병기·김낙철·김낙봉·박희인·홍기조 등 30여인이 참석했다. 이에 법석(法席)을 설(設)하자 도장의 청숙(淸肅)함이 완연히 신사께서 강림한 듯하였다. 성사께서 여러 사람을 돌아보며 『신사께서 재세시에 나에게 종통(宗統)을 맡기신 일은 여러분이 다 아는 바이로되 다시 신령의 영교를 받기 위하여 이 법석을 설하였으니 대개 신사의 정령은 유명(幽明)이 일치할지라 그러므로 이제 다시 신사의 영감을 받자와 종통을 정코자 함이로다』 말씀하고 이용구의 생질 6세된 아이를 가르켜 『이 아이는 순연(純然)한 천심(天心)뿐이라 이제 이 아이에게 붓을 잡히어 강서(降書)를 받음이 어떠하뇨』 하고 좌중에 물었다. 이에 박인호·손천민·손병흠·이용구·이종훈·홍병기 등 여러 사람은 다 옳다 하였고 그 밖에 몇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는데 바야흐로 의식을 행코자 할 때에 김연국이 입을 열어 말하기를 『신사 재세시에 의암으로 하여금 이미 종주(宗主)를 삼고 우리들로 하여금 도우라 하였는데 이제 다시 신령전에 강서를 받음은 신사의 정령이 반드시 노할 것이니 신사 재세시의 유훈에 의하여 대종주의식을 거행함이 가하다』 하였다. 그러자 성사께서 굳이 사양하여 말씀하시기를 『구암은 비록 이 말을 믿으나 혹 다른 사람이 믿지 않는 자 있고 보면 대도의 발전에 큰 장애가 될것이니 강서를 받아 맹세함이 가하다』 하니 김연국과 같이 온 부하 여러 사람도 또한 김연국의 말과 같으므로 성사께서 부득이하여 대종주예복을 입고 대도주가 되어 예석에 나아가 의식을 거행한 후 송암으로 성도주(小主), 구암으로 신도주(信道主), 춘암으로 경도주(敬道主)를 삼았다. 그리고 이 때에 성사께서 각포 도인에게 다음과 같이 명첩을 주었다.

    명 첩 (名 帖)

    용담연원(龍潭淵源)
    검악포덕(劍岳布德)
    북접대도주봉명전수(北接大道主奉命傳受)
    모읍(某邑) 모성명 봉수(奉受)
    모년 월 일생
    모관후인(某貫后人)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지대도
    모년 월 일

    또한 이때에 다음과 같은 강서가 있었다.

    『용담성운 여천무궁 장생불거 전수해월 승일도천 묘향선대 무사불섭 무사불명 영시오심 검악성세 전지무궁 불사불멸 장전심간 여시몰각 불감장거대도 택일설법 황연강교 명립기강 광제창생지대원

    (龍潭聖運 與天無窮 長生不去 傳授海月 乘日蹈天 杳向仙臺 無事不涉 無事不命 永侍吾心 劒岳聖世 傳之無窮 不死不滅 長全心肝 如是沒覺 不敢將擧大道 擇日設法 晃然降敎 明立紀綱 廣濟蒼生之大願)』


    『 하몽훈도일월지광명 전발사은도통지상수 선천용도호탕지광정 금일설법입강지절의 수진지만물사청덕 일거월래음양합덕 춘생추실조화성공 무거무래오심영시 불천불역대도창명 하하지지무궁이무궁 천필감응성심이일편 일이관지부자지성덕 공계송심석씨지도통 무형유적오도지조화 시천봉천 영세수진

    (荷夢薰陶一月之光明 傳鉢師恩道統之相授 先天用道浩蕩之廣政 今日說法立綱之絶義 守眞志滿勿捨淸德 日去月來陰陽合德 春生秋實造化成功 無去無來五心永侍 不遷不易大道創明 何何知知無窮而無窮 天必感應誠心而一片 一以貫之夫子之聖德 空界送心釋氏之道統 無形有迹吾道之造化 侍天奉天 永世守眞)』

    이어서 각지 도인에게 다음과 같은 통문을 발하였다.

    통 문

    용담유수(龍潭流水)는 천일생의 근원이요 검악일심(劒岳一心)은 무극초 화생화육의 대덕이요 하몽훈도 유재전발은 인성의 강이라 도가 그 가운데 있으니 궁천을인이요 운이 무대에 높으니 천황지황이라 사람은 본체가 있으니 스스로 모셨으므로 모실 줄을 알고 운이 태고에 돌아오니 정으로써 정을 알고 때는 사시가 있으니 자연히 알 것을 알도다. 자리를 펴고 법을 베푸니 허령지각이오 기강을 세워 학습하니 만사가 달통이라 비도심지는 곡학을 이름이요 유재정심은 순리를 비교한 것이라 진실로 이와 같으면 용담수류사해원은 수운대선생주 천황씨의 고명하신 근본이요 검악인재일편심은 해월선생주 지황씨의 전후하신 은덕이요 하몽훈도전발은은 개벽오만년 이후에 차차로 성심을 전수하여 오백원(員)이 도통하는 연원이니 이 어찌 도통설법의 연맥(連脈)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명교를 봉승하여 다시 양위선생전에 들어 차제로 사람을 택하되 위선 오백원중에 상재오십원을 먼저 내는 뜻이라 천지부판(剖判)이후에 다시 포태의 수를 정하여 인황씨 인도강령의 법을 특설하였으니 원컨대 출유발췌의 첨(僉)군자는 각각 모름지기 성경을 다하여 적자를 안보하듯 하고 대자대비하여 수련성도하고 일이관지하여 함께 대운에 참여하면 천만 행심이라.


    3. 손천민의 순도

    이 해(포덕41년) 8월에 성사께서 기도에 대한 통문을 다음과 같이 각 포 도인에게 반포하였다.

    통문


    『한울님께 복록정해 수명을랑 내게 비네』하신 말씀을 투리(透理)하면 황연대각할 일이라 이 삼재흉흉한 때를 당하여 만일 한울님과 스승님의 간섭하시는 조화가 아니면 인력으로써 어찌 살기를 도모하리오. 그러나 한울님과 스승님의 간섭하심은 사람의 지극한 정성에 있고 지극한 정성은 노고동면하고 공구신신(恐懼愼信)하는데 있나니 가히 척념치 아니하리오. 운수는 수시 변하는 고로 그 이치와 기운을 응하여 규제를 정하여 이에 효유하노니 원컨대 모든 군자는 각별히 헤아려 황연한 이치를 깨닫고 극진한 정성으로 규제를 좇아 한가지로 수역(壽域)에 나아가기를 천만 바라노라.

    규칙

    ㅡ, 물욕을 제거하고 개과천선하여 공평정대한 마음을 세워 한울님마음을 기쁘게 할 것.
    ㅡ, 정성을 다하고 공경을 다하여 두분 선생님 앞에 수명을 빌 것.
    ㅡ, 도장을 정결히 하고 의복을 정제하고 청수를 봉전하여 두 분 선생님 앞에 수명을 빌되 3·7일은 자시에, 7·7일은 인시에, 105일은 오시에 할 것.

    이 달에 송암 손천민이 순도하였다. 손천민은 신사께서 참형을 받은 후에 항상 개연한 빛으로 사람에게 말하기를  『선사 몸소 순도 하였으니 내 어찌 구구히 살기를 도모하여 몸을 피하리오. 내 반드시 도에 순하여 선사를 좇으리라』  하고 지목이 심하여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이 언어동작을 마음대로 하였다. 이 무렵 송암은 서우순과 함께 청주 산외면 서상옥의 집에 순접중(巡接中) 마침내 경병에게 체포되었다. 송암은 서울에서 심문을 받을 때에도 조금도 굴함이 없고 태연자약하게 도리와 대운의 소재를 설명한 후에 조용히 형을 받아 순도하였는데 이때가 8월 28일이었고 나이는 45세였다. 이때 서우순은 무사히 석방되었다.


    4. 신사심불사 세망도불망 (身死心不死 世亡道不亡)

    이 해(포덕 41년)에 각지 도인이 많이 잡혀 혹은 복역하고 혹은 피살된 사람들이 수천에 달하였다. 평안도 영변군 용추동 도인 강성택이 또한 체포되어 평안도관찰사 이도재의 심문을 받게 되었다. 이때 관찰사가 『네 만일 동학을 안믿기로 스스로 맹세하고 또 너의 스승에게 욕설을 가하면 내 너의 죄를 용서하리라』 고 말하자 강성택이 눈을 부릅뜨고 이도재를 꾸짖어 말하되 『너는 과연 무도무의(無道無義)한 놈이로다. 네 만일 적에게 붙잡혔다 가정하고 적이 만일 너로 하여금 너의 임금과 너의 아버지를 욕하라 하면 네 능히 임금과 아버지를 욕하고 살기를 도모할소냐. 네 또한 유를 배운 자라 능히 유를 배척하고 살기를 도모코자 할 것이가. 너는 오직 마음대로 하라. 나는 도를 위하여 죽음도 또한 사양치 않는다』 하자 이도재가 노하여 포살(砲殺)을 명하였다. 이때 강성택(康聖澤)은 철옹성(鐵瓮城) 밖 미륵모루 형장에 나아가『신사심불사 세망도불망(身死心不死 世亡道不亡)』이라는 시를 부르고 장렬하게 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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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무렵 성사께서는 홍병기에게 가사를 돌보게 하고 박인호로 하여금 각지 지혐(指嫌)의 상황을 시찰케 한 후에 손병흠·이용구·김학수 등과 더불어 예천군 용문사에 갔더니 승려 10여인이 나와 출영하면서 미리 준비하였던 다과를 내왔다. 성사께서 이상히 생각하고 그 연고를 물었더니 노승이 대답하기를 『어젯밤 꿈에 부처께서 현몽하기를 「명일 몇 시에 귀객이 올 터이니 너희는 문에 나아가 맞아들이라」하므로 그 꿈을 믿고 미리 문에 나아가 기다렸나이다』 하였다. 성사께서 용문사에서 21일간 기도를 마치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전도사문청불어 망각세계몽삼생 불인하가이유불 비불기감호유유 전각삼불진공양 취산귀처미식천 지시영불승여심 매식공양필성도 운귀용문사 수류낙동강 소우청산답 량풍벽공신 유어벽해심 제오청산의 백석만년골 홍화십일흔 화오제춘색 경인몽법계
    (轉到寺門聽佛語 忘却世界夢三生 弗人何可以有佛 非不豈敢乎有有 殿閣三佛進供養 臭散歸處味食天 知是靈佛僧汝心 每食供養必成道 雲歸龍門寺 水流洛東江 疎雨靑山答 凉風碧空信 遊魚碧海心 啼烏靑山意 白石萬年骨 紅花十日痕 花烏啼春色 驚人夢法界)



    5. 수도에 대한 통문

    이때 홍병기가 급보하기를 예천군수 이소영이 교졸을 많이 동원하여 성사의 종적을 탐색한다고 하므로 성사께서 그 밤으로 백리를 가서 제천군 염창석의 집에 이르자 홍병기 또한 밤을 이용하여 성사의 가족을 거느리고 제천에 와서 동거케 하였다. 성사께서 이에 각지도인에게 수도에 대한 통문을 다음과 같이 반포하였다.

    통 문


    용담수류사해원은 포덕천하의 이치요 사사상수 자재연원의 명교는 오백원(五百員)도통의 이치이니 어찌 명념하지 않으리오. 방금 대운이 통태(洞泰)하며 장차 대도설법으로 그 두령의 용도를 살피고저 선생의 심법으로 명을 받들어 정하노니 티끌과 더러운 것을 씻어 버리고 전일이 정성을 배가하여 후회하는데 이르는 탄식이 없게 하기를 밤낮 바라노라. 무릇 맑은 물의 근원으로써 맑은 강에 섞여 들면 반드시 청강의 청에 흔적이 없을 것이오 혼탁한 근원으로써 맑은 강에 섞여 들면 맑은 강이 받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맑은 강의 맑은 덕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물성품의 담백한데 합하지 못하는 것이라. 희(噫)라 물은 청탁이 없이 본성이 맑을 뿐이니 고요하면 맑고 움직이면 흐리는지라 물이 큰 바다를 이루지 못하면 능히 풍랑의 흐리고 어지러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람이 대도를 이루지 못하면 능히 티끌의 사사롭고 더러움을 물리치지 못하나니 바라건데 모름지기 물의 성품을 효양하여 빨리 대도를 이루어 오성의 청담화기로써 덕에 합함이 좋을 것이다.




    ■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이용

    ::예천군청홈페이지→문화 관광→교통 사이트 이용→예천시외버스터미날앞 승강장에서→용문사행 버스(1일 6회) *배차시간은 아래 홈페이지 참조
    자가용 이용
    ::중앙고속국도→단양IC→5번국도 우회전→927지방도 좌회전(길주의)→소백산관광목장 경유→대저교에서 우회전→928번지방도 우회전→용문면 원류삼거리에서 우회전→용문사

    ::중앙고속국도→예천IC→928지방도→용문면 원류삼거리에서 우회전→용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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