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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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도는 천지화육의 덕을 체(體)하여 선성미발의 뜻을 발명한 것이나 문자와 언어 사이에 만약 충효의 말이 아니면 하나라도 입 밖에 내지 않고 의리를 강론할 때에 진실로 예법의 단서가 아니면 도무지 마음 가운데 머물러 두지 아니하므로 평생의 학은 효도에는 마땅히 힘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뼈에 사무치는 생각은 매양 충성에는 목숨을 다하려고 하는지라 그러나 재질이 둔하고 학력이 부족하면 자연히 임금과 부모의 성스러운 뜻에 합하지 못하고 이에 반하여 나라에 근심을 끼치는 일을 하니 어찌 황송치 아니하며 어찌 진실로 두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임금과 백성의 분의가 정하여 있으니 임금에 충성하며 부모에 효도하는 것은 인사의 떳떳한 일이요 백성을 사랑하며 대신을 공경함은 국가의 바른 법이라 고금의 일을 볼 것 같으면 화단이 어찌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리오. 대개 의와 일이 서로 어긋나는 것은 직책이 있으면 의가 없고 의가 있으면 직책이 없으므로 일편단심이 매양 구구한 정을 다하고저 하나 마침내 미미한 정성을 이루지 못하니 더욱 마음 아픈 일이라. 가령 시비로 논하면 그 가운데 혹 비리의 단서가 있어 들추면 진실로 그러할 뿐 아니라 이로부터 일일이 바로 잡으면 또한 선성의 가르침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니 어찌 효제충신의 도가 아니겠는가? 이와 같이 밝고 밝은데도 나라로부터 자주 미안한 엄한 경계가 있어 도리어 국가의 금하는 바가 되니 실로 이것이 황공한 일이로다. 일이 이 같으매 세간의 분요함을 벗어버리고 이제부터 천하에 유람하여 흉금을 쾌활하게 할 뜻으로 곧 길을 떠날 것이나 연련한 정을 이기지 못하겠으므로 고루함을 생각지 않고 한 폭의 글로써 펴서 고하노니 어진 모든 군자는 임금과 부모의 명령을 순종하고 나라에 근심을 끼치지 말며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로 하여 천심을 잃지 않고 각각 직업을 따라 노고근면하며 위로는 국가의 공사를 받들고 아래로는 제가의 업을 이루어 임금에 충성하며 부모에 효도하는 마음으로써 잠시도 모앙하는 일을 늦추지 아니하면 후에 반드시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니 이로써 양해하면 천만다행이라. 신축(辛丑) 1901년 2월 3일 이때에 폐신(임금의 총애를 받는 신하) 이창구가 도인 조동원을 통해서 성사에게 글을 보내었는데 그 내용인즉 『이제 나라가 위태한 이때에 있어 공과 같은 영재로 한갓 외국에 오래 있음이 불가하므로 내 이제 천폐 (天陛)에 알리었으니 공은 속히 돌아오게 하소서. 만약 돌아오지 않으면 칙령으로써 부르게 되리라』 하였으므로 성사께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만약 칙령으로 부르게 되면 명을 어기기 어려울 터이니 가만히 이역에 가서 간신의 술을 면하리라』 하고 손병흠과 함께 청국 상해로 향하여 출발하였다. 상해에 도착한 성사께서는 황포강변에 있는 국제반점에 유숙하면서 미국행 선편을 알아보는 한편 당시의 혁명가인 손문과 교류하였다.
이때 의친왕 이강공이 성사의 인격을 흠모하여 자주 성사를 방문하였는데 성사 또한 때로는 의친왕의 부름을 받아 종종 국가의 대계와 경륜을 설파하였으며 귀국 후에도 의친왕은 성사의 충의와 동학의 진리에 공명하여 현도 이후 비밀히 입교식을 거행한 후 성사를 사부의 예(禮)로 대하였다. 또 어느 날 아침 성사께서 공중욕장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다가 나이 40 전후로 보이는 한국인 한 사람이 일본하녀를 옆에 데리고 나오는 것을 보고 『그대는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 하고 다그쳐 물으니 그는 한국사람 박영효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성사께서는 『금릉위(今陵尉) 박영효란 말인가. 그대도 한국 사람이요 나도 한국 사람인데 지금 우리나라 꼴이 어찌 되었는가. 그대는 더구나 금상폐하의 사위가 아닌가. 국가 흥망이 조석에 달리어 폐하께서는 침식이 불안하신 이때에 외국에 망명한 처지로서 어찌 목욕탕에까지 일본인 하녀를 데리고 다니면서 여러 사람 앞에서 추잡한 꼴을 보이는가.』 하고 힐난하였다. 이에 박영효는 곧 사과하고 이로부터 두 사람은 각별히 친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도하는 모든 절차는 조금도 서로의 뜻에 다를 것이 없으니 잠시라도 늦추지 말고 더욱 노력하여 좋은 인연을 잃지 말 것을 멀리서 바랍니다. 이제 혹시 수도의 범절을 힘쓰지 않고 무상왕래하며 허언이설로 난도하는 폐단에 이르게 하는 일이 있으면 도 밖으로 이탈할 뿐만 아니라 그 포 두령은 다른 날 서로 만나는 자리에 함께 참석치 못할 것이니 절대로 공이 한소고리에 무너지는 탄식이 없게 할 것을 명심하여 실지를 부지런히 행하면 혹 오래지 않아 서로 만날 시기가 있을 것은 감히 말할 수 없으나 공부할 날은 언제나 적고 기회는 언제나 빠르니 여러분을 위하여 주소 간 염려하는 바로소이다. 또 듣건대 금년 연사가 대흉년이라고 하니 삼재를 생각하면 반드시 바른 이치라 성. 경. 신 세 글자와 노고근면 네 글자를 과연 명심하고 있나이까. 한울이 반드시 감응할 것은 자연히 그 가운데 있을 것이므로 생과 식 두 글자는 천지의 바른 이치요 시정지 세 글자는 도의 종지라 사지(四肢)를 게으르게 하지 말고 갑절 노고하여 천심을 안보하며 서로 돌아보아 도와주는 것이 어떠할고? 여러 가지 진정은 번거롭게 다 말할 수 없으나 금번 고시하는 뜻은 실로 유리한 말이니 범연히 여기지 말고 다른 날에 후회하는 탄식이 없게 할 것을 천만 복축하나이다. 신축 (1901) 10월 포덕 43년(1902) 1월에 성사께서 서울 서강에 집을 옮겨 정광조로 하여금 가사를 살피게 하였고 3월에 정광조·오상준 등 학생 24인을 데리고 다시 일본 나라현에 이르러 교육에 전념하다가 6월에는 경도에 이거하여 학생들을 관립중학에 입학시켰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성사께서 본국 도인에게 훈유문을 보내어 수도에 힘쓰게 하니 서북으로 포덕이 날로 늘어 나용환·나인협·이두형·김유영·오영창·홍기억·홍기조·노석기·문학수·김학수·이겸수·이용구·김낙염·한태훈·정운봉·정계완·박영구 등 수백여포가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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