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천도교마산교구
명칭 | 천도교마산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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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교구장 김희수 |
전화 | 055-221-7827 |
휴대전화 | 010-3572-1864 |
지역 | 경상남도 |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합포구 산호동 160-22 |
홈페이지 | |
방문자 수 | 2233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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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산교구연혁
마산교구는 포덕52년(1911년) 평안남도 성천에서 출생한 원암 오복주 선생이 22세 때(포덕73년) 천도교에 입교하여 평안남도 순창군 신창면에서 청우당 위원장을 역임하다가 포덕 91년(1950) 6.25동란이 종전되든 해(포덕 94년) 피난 차 월남하여 이곳 마산 속칭 댓거리 피난 수용소에 정착하면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당시 마산 주변지역인 회화, 고성, 남해, 부산, 영산, 창녕일원에는 이미 교구가 설립되어 많은 교인들이 정착하고 있었으나 마산은 천도교의 불모지로 포덕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으나 원암 오복주 선생이 마산에 정착하면서 당시 피난교인 한사영 등 4, 5인과 함께 오복주 선생 자신의 판잣집에 천도교 간판을 걸고 시일을 봉행한 것이 마산에서 최초로 성주문 소리를 울리게 되었다.
포덕 96년경 6.25동란이 끝난 후로 반공포로들이 석방되면서 이북교인들이 찾아와 교인이 30여명으로 증가하게 되었으나 반공포로로 석방된 교인들은 생활고 등으로 각자 자기 삶을 찾아 마산을 떠나게 되자 불과 2년이 못되어 원래대로 4, 5명의 교인만이 남게 되었다.
포덕100년 오완주 선생(오복주의 종제)이 마산에 찾아와 정착하면서 형제가 협력하여 포덕 사업을 하던 중 창녕의 교역자 중암 하도인 선생을 만나게 되어 천도교의 불모지인 마산에 천도교의 씨를 뿌린 오씨 형제를 격려 하면서 매월 4, 5차례 마산에 들려 현지 교인들과 함께 피난교인 찾기 운동과 새 포덕운동 등의 노력으로 교인이 4, 50명으로 불어나게 되자 교당을 마련할 필요성을 절감한 나머지 오복주 선생의 발의로 전셋집을 얻기로 하고 중앙동의 신마산 보건소옆 산도식당 2층 목조기와건물 20평을 원암 오복주 선생 개인 돈(20만원)으로 전세를 얻어 천도교 마산시전교실 간판을 달고 그해 12월 24일 인일 기념일에 기념식을 마친 후 임원진을 선출한 결과 초대 전교사에 오복주, 교화 및 경리부장에 오완주, 교무부장에 이주삼, 고문에 하도인, 김형권 선생이 선임되었다.
이조직이 모태가 되어 포덕122년 4월10일 중앙총부로부터 마산 직접전교실 인준을 받은후 포덕123년 8월4일 교구로승격 초대 교구장에 정암 오완주에 이어 2대 해암 정홍수 3대 학암 윤충학 4대 호암 강대호 재임시 교당구입을 위한 성금모금의 정성과 총부지원으로 포덕147년 6월4일 교당을 마련하여 입주봉고식을 봉행하였으며 5대 청암 박정성 6대 갑암 신태주로 이어져 마산 창원 진해지역을 권역으로 우주공동체의 삶을위한 시천주 신앙의 포덕 교화에 정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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