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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신관은 ‘초월과 내재’ 그리고 ‘인격성과 자연성’을 모두 포함하는 신관이며, 동시에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니 사람이 이에 한울’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신관’이다.
각 종교에 있어 경배(敬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신(神)에 대한 명칭은 서로 같지 않다. 이러한 모습은 기성의 많은 종교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즉 ‘하느님’, ‘하나님’, ‘한얼님’ 등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이렇듯 기성의 많은 종교들이 표방하고 있는, ‘하느님’, ‘하나님’, ‘한얼님’ 등의 신에 대한 명칭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살고 있는 이 ‘땅(地)’의 상대개념인 ‘하늘(天)’을 그 염두에 두고, 신은 곧 이 지상이 아닌 저 먼 하늘에 계시다는 관념 속에서 부쳐진 이름들이라고 하겠다.
천도교 역시 그 믿음의 대상인 신(神)에 대한 명칭이 다른 종교들과는 다소 다르게 ‘한울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천도교의 ‘한울님’이라는 신에 대한 명칭은 ‘땅(地)’의 상대개념인 ‘하늘(天)’을 염두에 두고 붙인 이름은 아니다. 이 ‘한울님’이라는 명칭은 천(天)과 지(地)가 모두 포함되는 천지(天地), 곧 우주적 개념을 지닌 명칭이 된다.
일찍이 대신사 스스로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닌가”라고, 용담유사 「흥비가」에서 노래한 바와 같이, 이 ‘무궁한 이 울’은 곧 ‘무궁한 우주’를 말하고 있는 것이며, ‘무궁한 이 울’에서부터 ‘한울님’이라는 천도교에서 믿는 신의 명칭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한울님’이라는 신은 다만 인간이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地)의 상대가 되는 저 먼 하늘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 즉 우주 어디에나 편만(遍滿)되어 있으며 동시에 ‘내 몸에 주체적으로 모셔져 있다’고 보는 것이 천도교의 신관이기도 하다.
이렇듯 ‘내 몸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것’을 일컬어 ‘시천주(侍天主)’라고 말하며, 이것이 천도교 신관의 핵심이 된다. 따라서 사람들 모두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 역시 무궁한 한울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천도교 윤리가 나오게 된 것이고, ‘사람이 이에 한울’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종지(宗旨)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천도교의 신관은 종래의, 신이 어느 초월적 공간에 존재한다고 믿어왔던 초월적 유일신(唯一神)의 신관과 만물 속에 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재적 범신(汎神)의 신관을 동시에 극복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천도교의 신인 ‘한울님’은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내재적이고, 인격적이면서 동시에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반대일치(反對一致)의 묘합(妙合)을 보이고 있다. 나아가 한울님은 무궁한 절대자로서 만물을 화생(化生)하는 조화(造化)의 주재자이면서, 아직 인간의 역사창조에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계속 인간을 통하여 새로운 창조와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신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울님은 우주 만물을 낳으신 초월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만물 속에 내재해 계시면서 무궁한 생성, 변화를 주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울님의 조화는 우주 만유의 끊임없는 생성변화와 그 질서를 주재하는 지공무사(至公無私)하며 전지전능(全知全能)한 힘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이 조화는 무위이화(無爲而化)로서 어떤 다른 힘의 작위(作爲)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한울님의 섭리에 의하여 저절로 되는, 말하자면 타율적이 아닌 자율적 창조·진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천도교의 종교적 경배의 대상이 되는 ‘한울님’은 어떠한 표현으로도 개념화될 수 없는, 인간 지식의 한계를 초월한 무궁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깊은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의 감응(感應)을 받을 수 있게 되고 거룩한 한울님의 뜻을 거느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우주 만유는 한울님 스스로의 무궁한 조화에 의하여 그 자취를 나타내는 것이며, 사람은 한울님을 몸에 모시고 한울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울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설파한 천도교의 신관은 곧 단순한 초월적 신관이나 내재적 범신이 아닌 ‘초월과 내재’를 모두 포함하며, 동시에 ‘인격성과 자연성’을 모두 포함하는 신관이다. 따라서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니 사람이 이에 한울’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신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