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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은 우주에 가득 찬 지기(至氣)라는 거대한 생명에서 온 것이며, 그러므로 죽는다는 것을 천도교에서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라는 의미인 ‘환원(還元)’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다.
앞서 천도교의 우주관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 광대한 우주는 하나의 커다란 영성(靈性)의 생명체로 되어 있다. 따라서 우주의 모든 만유(萬有) 역시 그 생명의 근원을 이 지기(至氣)라는 커다란 하나의 생명, 즉 한울님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보는 것이 곧 천도교의 생명에 관한 관점이기도 하다. 즉 모든 생명은 바로 한울님, 곧 이 우주에 가득 찬 지기(至氣)라는 커다란 생명에서 온 것이며, 동시에 죽게 되면 이 우주의 커다란 생명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는다는 것을 천도교에서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라는 의미인 ‘환원(還元)’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다.
즉 인간의 생명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궁극적으로는 지기, 곧 한울님 성령으로부터 와서 살아가다가 다시 지기라는 커다란 생명, 곧 한울님의 무궁한 성령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도 나의 생명은 이 지기에 있었던 것이요, ‘나’라는 사람이 죽은 후에도 나의 생명은 지기라는 커다란 생명체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이러함을 깨닫게 된다면 죽고 사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명은 무궁한 한울님 성령으로서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천도교의 사후관은 바로 이와 같은 깨달음 속에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와 같이 죽은 이후에 성령이 가는 세상, 곧 천당이나 극락, 지옥 등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죽음 이후에 성령은 무궁한 한울님 성령, 곧 지기라는 근원적 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동시에 자손과 후학의 심령(心靈) 속에 한울님 성령으로 살아남아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당과 지옥은 이러함을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 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 담겨져 있다고 보는 것이 곧 천도교의 사후관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천도교인은 제사(祭祀)를 지낼 때에 조상의 성령이 모셔진 신위(神位)를 저쪽 ‘벽(壁)’에다 세워놓고 제(祭)를 지내는 ‘향벽설위(向壁設位)’의 방법으로 하지 않고, 조상의 성령이 나에게 모셔져 있으므로 신위가 없이 내 마음을 향해서 제사를 지내는 ‘향아설위(向我設位)’의 방법에 의하여 제(祭)를 지낸다. 즉 이러한 제사의 방법은 다름 아니라, 죽은 조상의 성령이 다른 차원의 공간인 천당이나 저승으로 간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모셔져 있다는 천도교의 사후관을 잘 나타낸 모습이라고 하겠다.
나아가 현세인 이 지상(地上)과는 별도로 천당과 지옥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인 천상(天上)을 천도교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천도교의 인식 방법은 흔히 유한적(有限的)인 존재라고 하는 사람이 한울님 모심을 깨닫게 되면 이내 그 무궁한 한울님과 더불어 무한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는 시천주(侍天主), 나아가 ‘사람이 이에 한울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에서부터 비롯된 내세관이며 사후관이라고 하겠다. 모든 생명체가 육체적으로 소멸하게 되면, 다시 말해서 죽게 되면 이 지상에서 공간적 차원을 달리 해서 천당이나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본래 내 생명의 근원인 지기라는 커다란 생명으로 다시 돌아가서 자손과 후학의 성령과 융합일치되어 영원히 살아간다는 것이 천도교의 내세관이며 사후관(死後觀)이다.
이와 같은 면에서 보면 천도교에서 말하고 있는 장생(長生)이란 육체적인 장생이 아니라, 무궁한 우주적 생명을 깨달음으로써 알게 되는 무궁한 '영적 장생'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게 되면 생사(生死)를 초월한 성인(聖人)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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