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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월신사 은거 유허비 경북 영양군 자생화공원에 세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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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13회 작성일 24-07-0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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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6일(목), 경북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대티골 자생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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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국 인시천 영양 동학 해월 최시형 기념사업회장은 경과보고에서 “경주가 동학의 탄생지라면 영양은 동학의 제2의 탄생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1894년 동학혁명 뒤  영양의 기념비적인 자취는 잊혀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유허비를 세우자는 활동이 10여 년 전 윤석산 교수가 중심이 되어 동학 도인 유기제 전 영양군 농민회 회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인시천 영양 동학 해월 최시형 기념사업회’(영양 동학 공부 모임)이 결성되고 유허비 건립에 주도적으로 나섰다. 2019년 '해월 최시형 은거지 인문자연자원 고증연구' 사업을 했으며 2020년 12월 7일 '동학혁명과 3.1독립운동을 있게 한 영양 동학' 강연회를 개최하여 영양 동학의 역사적 의미를 드러내는 활동을 했다. 2023년에는 해월 선생의 영양 거주 활동에 대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한 '2023 영양 동학혁명기념사업 추진방안 연구' 사업을 하였다. 그 1차 실천 결과물로 유허비를 2023년 10월 착공하고  오늘 제막식을 갖게 되었다.”라고 보고하였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기념사에서 “우리가 유허비에 새긴 것처럼 영양이 없었다면 동학의 역사는 이어질 수 없었고 지금 우리 한국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 지 모를 일이다. 영양 용화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동학교조로서의 삶에서 가장 오래 동안 한곳에 살았던 곳이라 제2의 고향이라 할 수도 있다. 동학혁명의 역사에서는 봉기한 호남지방만 언급되는데 이 동학혁명의 역량을 기른 곳이 영양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지금 우리는 동학이 제시하는 경인 경천 경물의 모심과 살림의 삶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있다. 오늘 세운 이 해월 선생의 삶의 자리 유허비가 영양군민에게는 하늘인 사람이 하늘답게 사는 길을 돌아보며 지역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밖으로는 한국역사를 새롭게 하고 새 문명의 길도 제시한 명소로 영양을 찾는 발걸음이 잦아지길 기대한다. 그래서 인시천(人是天)! 하늘인 사람이 하늘답게 서로 모시고 살리는 세상이 이루지는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 영양군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생겼다. 유허비 건립에 애 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밝혔다.

    윤석산 천도교 교령은 격려사 및 비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하면서 “오늘 감격스럽다. 2000년도부터 이곳 용화동을 드나들었다. 해월 선생 유허비를 세우느라 군청에도 여러 번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군수님이 지원해주기로 했는데 주민이 반대하여 중단되는 등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인시천 이상국 회장을 비롯한 군의회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서 오늘 감격스럽게 유허비가 서게 되었다. 이곳은 1865~1871년에 해월신사께서 은거하셨던 곳이다. 160년 전에 이곳은 말도 못 하는 시골이었겠지만 당시 동학 도인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해월 선생이 오셨다. 해월 선생이 이곳에 계시면서 경상도 강원도 일대를 다니면서 설법을 폈고 네트워크를 구성해 이곳 영양에 대도소(현시대의 중앙총부 격)를 만들어서 총괄하였다. 동학이 봉건사회에서 내놓은 평등사상은 정말로 혁명적인 가르침이었다. 하나 오늘날에 있어 평등을 뛰어넘는 가르침이 동학에 있다. 평등을 뛰어넘어 조화(調和)를 가르친다. 이러한 사상이 오늘날의 갈등 사회를 해결할 수 있다. 오늘날 21세기는 갈등이 극에 달해있는 시대다. 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밥을 먹다가 싸움이 난다. 정치 때문에 싸움이 난다. 그런 세상이 지금이다. 이러한 갈등의 시대에 서로가 조화를 해서, 어우러져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동학은 담고 있다. 거기에 주목을 해야 한다. ‘사람이 한울이다.’라고 해서 사람만 존귀한 존재라는 인본사상으로만 오해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것은 생명 사상이다. 사람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고,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자연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서로가 서로의 생명을 존중해주는 그러한 생명 사상이 이 안에는 담겨 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이 영양 윗대치에서 시작이 되었다. 그것이 해월 선생의 가르침 「대인접물」이다.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사물을 어떻게 접하느냐의 깨달음을 펼치신 것이 「대인접물」 설법이다. 그것은 단순한 동학의 가르침이 아니라 21세기 이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가르침으로 가치를 지닌다. 그러므로 영양 윗대치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유허비는 '인시천 영양 동학 해월 최시형 기념사업회'에서 최시형 신사의 호인 ‘해월(海月)_밤바다. 깜깜한 세상을 밝히는 달’을 상징하였고 비문은 윤석산 교수님(교령)이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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