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독립운동 기점 정립을 위한 국회토론회 열려, 정갑선 교무관장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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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 등 전봉준·김개남·손화중 선생 독립유공자 국가보훈부에 서훈신청
동학농민혁명130주년 맞아 제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1.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서훈의 기점을 1895년에서 1894년으로 내규를 바꿔야한다.」 2. 「국회에서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에서'순국선열과 애국지사는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를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는 1894년 일제의 국권침탈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로 독립유공자법을 일부 개정해야 한다.」 |
지난 8월 13일 항일독립운동 기점 정립을 위한 국회토론회에 중앙총부 정갑선 교무관장이 참석하였다.
이날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 등은 8월 21일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부에 전봉준·김개남·손화중 선생 독립유공자 포상 즉 서훈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관련단체 및 관계자들은 지난 2023년 5월 국가보훈부에 전봉준·김개남·손화중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지만, 독립유공자 공적심사 결과 "활동내역에 있어 독립운동 성격 불분명"의 사유로 포상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어 2023년 8월 전봉준 선생 등 독립유공자 재심 즉 2심 신청을 하였으나, "독립운동 성격 불분명"의 사유로 독립운동가 포상에서 보류되었다.
올해(2024년) 수운 최제우 선생 출세 200주년과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아 세 번째 전봉준·김개남·손화중 선생의 독립유공자 포상 즉 서훈신청 3심을 요청하였다. 지난 2023년 국가보훈부는 두 번에 걸친 재심 신청에 "전봉준 선생 등 독립운동 활동내용이 불분명해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히며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의결과를 통보하였으나, 이들 단체 및 관계자들은 전봉준 선생 등 서훈 탈락, 공적심사 결과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전봉준 선생의 공적심사 결과는 '독립운동 성격 불분명'으로 되어있다. 독립운동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국가 즉 일본에 종속된 우리나라의 식민지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1910년 8.29일 경술국치, 즉 한일병합에 의한 국권상실 이후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과정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1910년 경술국치 이후부터 1945년 8월 14일 해방 직전까지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어야 독립운동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에 의하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는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했거나, 그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건국포장 또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를 말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일제의 국권침탈은 1905년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乙巳勒約)부터라고 보고 있지만, 법률에서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그 시기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모순을 이용해 1962년 독립유공자 서훈 내규에 독립유공자 서훈의 기점을 1895년 을미의병(乙未義兵)으로 정해놓고, 현재까지 189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제외시키고 있다.
이러한 차별적인 법률적용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헌법위반이며, 6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1895년 을미의병은 되고, 1894년 2차 동학농민혁명 즉 동학의병은 안 된다는 것은 반 헌법적이며, 을미의병 서훈 145명도 자격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러한 불평등한 법률적용을 시정하려면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서훈의 기점을 1895년에서 1894년으로 내규를 바꾸던지, 아니면 국회에서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에서,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를, 1894년 일제의 국권침탈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로 독립유공자 예우법을 일부 개정해야 한다.
이와 같이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를 개정하고자하는 명분은, 지난 2004년 제정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호에 ‘1894년 9월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2차로 봉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 중심의 혁명’이라고 명확히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은 1894년 11월 12일 동학혁명군총대장 전봉준이 일본군에 대항하기 위하여 의병 동참을 호소하는 ‘고시 경군여영병이교시민’과 일제의 경복궁 점령과 국권침탈에 맞서 의병을 일으켰다는 ‘전봉준 사형 판결문’을 첨부하여 "1~2차 전봉준·김개남·손화중 선생의 독립유공자 포상신청 즉 서훈이 보류되었음에도 제3차 서훈신청을 했다"라고 밝혔다.
이날 윤준병 의원을 비롯해 정동영·김윤덕·서삼석·안호영·민형배·박수현·복기왕·이원택·박희승·이성윤·이재관 국회의원이 공동주최 대표자로 인사말을 하였다. 또한 주관단체 대표로 신순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이윤영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 곽형주 사)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였다.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경남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제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주관한 이번 국회토론회는 김용달 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이 좌장, 박용규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유바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남경국 남경국헌법학연구소 소장이 발제를 맡았으며 토론에는 신영우 충북대 사학과 명예교수, 조광환 동학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병구 국가보훈부 공훈심사과 과장, 이수원 문화체육관광부 전통문화과 과장이 토론자로 나와 열띤 토론을 펼쳤다.
국회학술토론회가 끝나고 정갑선 천도교중앙총부 교무관장과 대내외참석자들은 만찬시간을 갖고 토론회장에서 못다 한 동학서훈에 관한 토론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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