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10 독립만세운동 99주년 기념식,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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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독립만세운동 99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6월 10일 서울 종로구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열렸다. 이번 기념식은 1926년 일제강점기 하에서 순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난 6·10 만세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 내년 100주년을 앞두고 그 가치를 재조명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기념식은 전명운 교화관장의 집례로 천도교의례(개식, 청수봉전, 주문 3회 병송 등), 박인준 교령의 기념사, 심고, 폐식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어진 2부 행사에서는 6·10 만세운동의 주역들을 기리는 순서가 이어졌다.
이날 기념식은 종교·이념·계층을 초월해 조국의 독립을 외쳤던 선열들의 뜻을 기리며, 이 운동이 민족 통합의 초석이 되었음을 강조했다.
박인준 교령은 기념사에서 “내년은 6·10만세운동 100주년입니다. 우리는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 교령은 “천도교청년동맹의 간부였던 박래원 선생은 춘암 박인호 상사의 조카로, 천도교 지도자들의 지원 속에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며 천도교의 주도적 역할을 언급했다.
또한 “6·10만세 운동에서 보여준 종교, 정치, 계급적 이념을 뛰어넘는 민족협동전선의 실천은 민족적 과제인 독립운동 통합의 시발점이 되었고, 해외로는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전파되었으며, 국내에서는 이듬해 천도교청년동맹 대표인 박래홍을 중심으로 한 국내 최대의 좌우합동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 창립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라고 의미를 짚었다.
권오설권오창 기념사업회 이준식 이사장도 “내년 100주년은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분단 극복과 민족 통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인 기념 행사가 열리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2부 행사는 6·10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박성현 이사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황선건 유족회장이 추진위 경과보고와 역사선언문을 낭독했다. 이동초 선도사의 특별강의 ‘천도교단과 육십만세운동’은 최인경 사회문화관장이 요약하여 전달했다.
이번 기념식은 6·10 만세운동이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민족적 연대와 자주정신의 가치를 전하는 살아 있는 유산임을 일깨우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아래는 준암 박인준 교령의 기념사 전문이다.
제99주년 6·10만세운동 기념사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분열이 아닌 한반도의 진정한 통일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고 동귀일체하여 손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6·10만세운동 99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주신 동덕 여러분과 유족 여러분, 그리고, 황선권 6.10만세운동 유족회 회장님, 권오설 권오상 기념사업회 이준식 이사장님, 항일혁명기념단체연합 김찬휘 상임이사님, 6.10만세운동 100주년준비위원회 권영길, 윤경로 공동위원장님,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시청해 주시는 국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내년은 6·10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러한 때를 앞두고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보훈처에서 선정하여 추모 선양하고 있는 김단야, 박래원, 권오설, 권오상, 이관술, 이동환, 이선호 등의 독립운동가에 대하여 우리는 공경합니다. 이 분들은 모두 6·10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자로서 국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으신 분입니다. 특히 박래원 선생은 천도교 4세 대도주이신 춘암 박인호 상사의 조카로 당시 천도교청년동맹의 핵심간부로서 춘암상사를 비롯한 천도교 지도자들의 지원 속에 6·10만세를 진두 준비하였습니다. 의암 손병희 성사께서 영도하신 3·1혁명 이후 일본의 만행은 극에 달했는데, 이런 가운데 고도화된 일제의 민족분열공작의 결과로 대한독립의 의지를 가졌던 일부 인사들은 식민지 조선을 인정하고 대신 조선에 독자적 의회를 설치하여 적당히 타협함으로써, 일정 부분 내정의 자치권을 얻자는 이른바 자치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같은 자치론에 대해 반대하며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합동을 하게 되었고, 제2의 3·1혁명을 표방하며 6·10만세운동을 준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천도교가 주체가 되어 조선공산당과 연대하여 준비하던 6·10만세운동은 거사 일인 순종의 인산일 전에 사전 발각되어 3·1혁명과 달리 거국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전국의 천도교 지도자들을 비롯한 수백 명이 체포되면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6·10만세 운동에서 보여준 종교, 정치, 계급적 이념을 뛰어넘는 민족협동전선의 실천은 민족적 과제인 독립운동 통합의 시발점이 되었고, 해외로는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전파되었으며, 국내에서는 이듬해 천도교청년동맹 대표인 박래홍을 중심으로 한 국내 최대의 좌우합동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 창립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천도교는 그 독립의 의지를 〈오심당〉 운동과 〈무인멸왜기도〉로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80년이 된 지금까지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은 일본의 배상 문제, 그리고 진정 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의 무성의한 태도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여전히 청산하지 못한 친일 잔재를 보면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천도교는 동학의 정신으로 과거와 현재를 지나 미래를 향해 “개 같은 왜적 놈을 한울님께 조화 받아 일야에 멸하고자” 새로운 극일의 길로 뚜벅뿌벅 걸어가면서, 동시에 과거를 극복하고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어떤 세력과도 연대와 협동, 그리고 상생의 정신으로 함께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고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 지상천국 건설의 대업이 하루빨리 성취되기를 기대하면서 간절히 심고하겠습니다. 6·10독립만세운동 99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올리며, 한울님의 감응이 함께 하기를 심고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포덕166년 6월 10일 천도교 교령 박 인 준 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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