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신사 순도일 맞아 묘소참례식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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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 해월신사 순도일을 맞아 여주시 천덕산(금사면 주록리 산 138)에 자리한 해월신사 묘소를 참례하였다.
참례식에는 박인준 교령을 비롯하여 김성환 연원회 의장, 명승철 연원회 부의장, 강병로 종무원장, 김 산 유지재단이사장, 서소연 교무관장, 이동희 경리관장, 최인경 사회문화관장을 비롯한 교역자 및 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하였다.
참례식은 전명운 교화관장의 집례로 청수봉전, 심고, 주문3회 병송, 분향 등으로 이어진 후 헌화 및 기념사진 촬영을 하였다.
박인준 교령은 인사말에서 “바쁘신 중에도, 또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많이 참석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해월 신사님의 마지막 모습은 러시아 공사 파블로프가 촬영한, 사형 직전의 사진 속 모습입니다. 그 사진에서 해월 신사님은 상체를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쓰러질 듯한 몸을 지탱하기 위해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주고 있었다고도 전해지며, 혹은 뒷벽에 못을 박고 옷을 걸어 상체를 억지로 세워 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진 한쪽에는 ‘처교죄인 동학괴수 최시형’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두 발은 터질 듯이 부어 있었고, 옷은 남루했으며,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수염도 깎지 않아 무성했습니다. 그러나 그 눈빛은 영롱하고 낯빛은 슬기롭고도 웅장했습니다. 해월 신사님의 모습은 마치 성자처럼 인자하고 따뜻했으며, 지금도 우리 가슴 속에 가장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 계십니다. 해월신사께서는 포덕 39년, 곧 1898년 6월 2일 오후 5시경, 단성사 뒤편 한성감옥 교형장에서 순도하셨습니다. 이틀 뒤인 6월 4일,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신사님의 시신은 광화문 밖에 버려져 있었고, 이를 이종훈, 김준식 등이 수습하여 제자이신 손병희, 김연국, 박인호 상사님 등과 함께 광주 송파 이상하의 집 뒷산에 안장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포덕 41년, 1900년 5월 1일, 박인호 상사께서 송파 묘소에서 유해를 다시 거두고 손병희, 김연국 등 여러 동덕들과 함께 이곳 천덕산 중턱에 이장하였습니다. 유해를 옮기던 날도 비가 장대처럼 퍼붓는 밤이었습니다. 춘암 박인호 상사께서는 칠성판에 유해를 모시고 각목으로 천을 감아 지고 오셨습니다. 오던 중 어느 여인의 집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그날 밤, 빗속에서 처마 밑에 유해를 세워두고 상사께서는 밤새 서서 옆에서 주문을 외우셨다고 합니다. 그 광경을 본 주인은 ‘세상에 저런 효자가 또 어디 있을까’ 하며 크게 감탄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후학들이 스승님의 뜻을 기리고 추도하는 것은, 그 가르침을 널리 펴서 정신을 개벽하고 세상을 다시 개벽하겠다는 다짐이자 실천입니다. 더욱이 내후년은 해월 신사님의 탄신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계기로 스승님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기리고 널리 현창하고자, 총부에서는 다양한 뜻깊은 사업을 펼칠 계획입니다. 이 일에 동덕 여러분께서도 함께 참여해 주시고, 정성을 모아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러한 정성과 노력이 모여, 포덕이 크게 일어나고 마침내 천도교 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함께 기대해 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용근 여주교구장의 해월신사 묘소 일대를 정비하고 동학의 길 코스를 기획한 여주지역 관련단체 소개가 있었으며, 단체 회원들이 해월신사를 기리며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찾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해월신사 묘소 참례식을 마친 후, 이날 묘소 앞에 묘목을 심기 위해 빗길을 달려온 이임언 동덕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올해로 순도 제127주기를 맞이하는 해월신사의 정신과 뜻을 기리는 이번 참례 행사는 많은 이들의 정성 속에 큰 의미를 되새기며 봉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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