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31수운은 자신의 한울님 체험을 ‘시천주’(侍天主)라는 철학적 명제로 정립하였다. 그중에서도 시(侍) 자를 스스로 해석하면서 ‘안으로 신령이 있고(內有神靈) 밖으로 기화가 있어(外有氣化), 온 세상 사람들이 각기 그것에서 분리될 수 없음을 아는 것(一世之人 各知不移)’이라고 정의했다. 즉 ‘한울님을 모신다’는 것은 “안팎에서 영과 기... 더보기
P. 66해월의 한울님의 관념은 넓고 깊어져서 천지 자체를 한울님으로 보는가 하면, 모든 사물, 모든 사람들을 한울님으로 보았다.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이 곧 한울이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공경하는 것을 모든 실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자신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고 그 마음을 ‘한울님 마음’(天心)으로 지켜내고자 애쓰며, 떨리는 외경심으로 뭇 사람들과 뭇 생명을 공경할 것을 가르쳤다.
P. 131해월은 마음과 기운의 이치를 분명히 깨달아 스스로의 마음을 늘 맑고 밝고 온화하게 잘 돌볼 뿐 아니라, 그 마음 씀의 이치를 잘 헤아려서 한울의 기운을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한 것이며, 동시에 고립적인 자기중심주의를 넘어서 한울과 내가 둘이 아니며, 우주만물과 내가 둘이 아님을 온몸으로 깨달아 애씀 없이 천도와 합치된 무위이화의 삶을 살라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 동학의 수도이며 실천의 핵심이다.
P. 186생명살림의 이치는 먼저 내 몸과 마음을 살리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내 몸과 마음을 먼저 치유해서 평안하게 하지 않고서 세상의 평화와 화해, 치유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생명살림을 위해서 하나 더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무한 성장에의 환상을 버리고 진정한 인간의 행복과 자유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인류가 오늘날의 극단의 생태 위기를 넘어 평화롭게 공존 공생할 수 있는 길을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성장 중심 문명을 지속하는 한 기후위기를 비롯한 생태계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생활양식과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해월은 “일용행사가 도 아님이 없다.”고 하였다. 생활방식의 변화는 단호한 결단을 요구한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인생관을 사회적 성공이나 출세, 외면적 화려함과 편안함에 두지 않고 자기실현과 영적 성장에 두고, 불편하지만 생명파괴를 하지 않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P. 240지금 우리는 다시개벽의 문명적 대전환기를 살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정말 특별한 시기를 건너고 있다. 지금 이 시기는 절멸적 위기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예전엔 몇몇 영적 천재들만이 이루었던 정신적 성취를 이제 보통 사람들도 이룰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사람들 내면에 있는 신성의 불꽃이 깨어나고 지혜가 밝아지고 의식의 진화가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것이 수운과 해월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한울님을 발견함으로써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새로운 존재로 깨어나고 고양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인류의 정신이 한 단계 높아지고, 품격 있는 도의적 생태문명을 열어낼 수 있길 간절히 열망한다.
P. 292수운의 뒤를 이은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 1824-1898)은 평민 출신으로서 수운의 가르침을 민중의 삶 속에서 구현하며 동학을 평민의 철학이자 민중의 종교로, 또한 생명과 평화의 사상으로 정립했다. 그는 가난한 평민의 아들로 태어나 곤궁한 삶을 살았지만, 수운을 만나 비범한 인격으로 거듭났으며, 평생을 쫓기면서도 동학적 삶의 향기를 잃지 않았다. 특히 그는 공경을 일상에서 생활화하고, 살림의 실천으로 동학적 인격의 전형을 몸소 보여주었다. 동학을 비로소 참다운 민중의 종교로 재탄생시킨 것은 해월의 공이다. 그의 사상은 계급해방을 넘어 남녀해방, 어린이해방, 나아가 경물(敬物)의 생태적 해방에까지 나아갔으며, 모든 생명들이 한울님으로 공경받는 참다운 도덕 문명의 세상을 꿈꾸었다. 그분의 육신은 비록 땅으로 돌아갔지만, 그분이 남기신 사상과 정신은 우리 가슴에 활활 살아, 새 세상을 밝히는 신성한 불꽃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