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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오동학과 기미천도교의 21세기 함성/ 박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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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윤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8,536회   작성일Date 11-06-01 10:48

    본문




    갑오동학과 기미천도교의

    21세기 함성

    박영인(전 캘리포니아주립대교수)
    -동학혁명기념관 기념행사 강연전문-

    목 차

    Ⅰ 서언

    Ⅱ 동학/천도교의 풀뿌리 민주사상

    1. 시천주

    2. 사인여천

    3, 인내천

    Ⅲ 갑오혁명과 기미운동

    1. 동학농민혁명

    2. 기미독립운동

    Ⅳ 동학혁명/천도교운동의 오늘날 다시외침

    1. 한민족을 향하여

    1) 한반도의 통합

    2) 세계평화에 기여

    3) 지상천국의 지향

    2. 천도인을 향하여

    1) 지극한 쇠운을 청산하라

    2) 후천종교의 기반을 구축하라

    3) 천도교세계화를 추진하라

    Ⅴ 결언



    Ⅰ. 서언

    포덕46년(1905) 12월 1일은 “어제의 동학이 오늘의 천도교”인 것을 대고천하한 날이다. 다시 말하면 어제의 동학진수는 갑오혁명으로 이미 표출되었고 그 뒤를 이어 오늘의 천도교실체가 앞으로 다가올 기미운동을 예약한 기점이기도하다. 벌써 106년 전의 일, 21세기를 맞은 한국인/천도인들은 지금 포덕150년대를 살아가면서 갑오의 선열들과 기미의 전 국민이 온몸으로 외친 그 위대한 함성을 강하게 듣고 있다.

    자랑스러운 동학ㆍ천도교의 그때 울부짖음은 최수운(崔水雲)이 제창한 무극대도/천도의 민주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을 중시하는 공평한 사회와 민주/자주국가를 존중하는 세계질서의 확립을 주창한 것이다. 한반도가 대내외적으로 고난의 역사를 경험하던 상황에서 그에 적절하게 몸부림을 친 조상들의 쾌거에 우리는 존경과 감사, 그리고 숙연한 결의의 자세를 갖게 된다.

    그런데 오늘의 천도교와 한민족 실상은 어떠한가? 그때 다 이루지 못한 유업을 계승 달성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 경건하게 자문자답해 보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천도교는 노쇠하여 혼몽상태이고 한민족은 분열하여 갈등을 지속하고 있어 안타깝다. 목숨을 바친 함성의 메아리가 귓전을 울린다. 미래의 역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하늘은 사람이 노력한 만큼만 사람을 도와준다.

    Ⅱ. 동학/천도교의 풀뿌리 민주사상

    최수운의 동학은 동양전래의 유불선과 새로 유입된 서양사상의 본원이 바로 천도(天道)임을 밝혔다. 1860년 창도당시 선천 바탕의 국내 정치, 사회는 극도의 모순과 불합리에 빠졌고 침략 전초인 외래문물의 잠입은 조선반도의 근대화 과정을 무질서의 혼란으로 몰아갔다. 이에 동학은 최수운의 시천주에 이은 최해월(崔時亨)의 사인여천, 나아가 훗날 손의암(孫秉熙)의 천도교와 인내천을 통하여 사람을 원초/기축[풀뿌리, grass-root]으로 존중하는 민본사상을 자연스럽게 형성, 전파해 갔다.

    1. 시천주

    사람마다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최수운의 시천주사상은 21자 주문에 그 뜻이 담겨 있고 한울과 사람의 관계가 선천개념인 별개의 이분화 존재가 아니라 그대로 곧 하나인 것을 천명하고 있다. 그래서 최수운의 이러한 사상전개가 바로 후천개벽이고 여기서부터 새로운 인간사회, 새 세상을 꿈꾸게 한 것이다. 한울님을 모신 인간의 존귀성과 자존심의 원천적인 발로, 바로 그것이었다.

    최수운의 시천주는 사람의 평등성인 천부인권의 확인이다. 스스로가 여자종을 며느리와 수양딸로 삼아 인간 기본 자유를 몸소 실천한것이다. 말 그대로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다”를 보여 주었다. 지배와 피지배의식, 반상과 각종 차별이 용납될 수 없는 당위성의 실증이었다.

    조선조 말기의 불평등 사회에서 새롭게 제기된 시천주사상은 민초들이 쌓아왔던 오랜 불만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기폭, 청량제였다. 그 많은 원한과 민란에 대한 위안, 동조의 진정제이기도 했다. 모두가 사람답게 동등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권리와 윤리의 진면목을 제시한 것이다. 동학의 이념은 그래서 사회저변에 급속하게 파고들었다.

    2. 사인여천

    최해월은 시천주에 입각하여 인간존중, 만인평등을 확고히 하고 부녀자와 아이들까지도 똑같이 사람대접하라고 가르쳤다. 한울님 섬기듯 사람도 한울님처럼 모시라는 사인여천을 강조한 것이다. 모든 인격을 평등선상에서 다루는 실천윤리를 체계화하고 스스로가 그렇게 살아갔다.

    한울님을 공경하듯이 사람만이 아니라 물건까지도 그와 같이 응대하라는 삼경사상도 제시하였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자연과 더불어 있는 그대로 네트워킹 하라는 것이다. 우주만유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의 상호 연관을 필연으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너와 나의 공존, 공영을 역설하고 동귀일체의 조화연계를 강조한 것이다.

    19세기 말기의 한반도는 계층 간, 계층내의 인간적 불협화음으로 아귀다툼이 극치에 달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을 서로 경애하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사인여천의 기치는 실로 다시개벽의 청신한 충격이었다. 새로운 세상의 단면을 엿보게 하여 피지배 민중들의 활로를 열어주고 지배자의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3. 인내천

    손의암의 천도교는 최수운, 최해월의 동학사상을 그대로 계승한 만민공통의 종교체계이다. 따라서 시천주사상과 사인여천 윤리에 이어 인내천 주의를 표방하고 새로운 종교의 종지로 확립한 것이다. 사람이 이에 한울, 즉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한울님처럼 서로 섬겨 마침내 모두가 한 몸이 되어 함께 한울님으로 살아간다는 인식과 실행을 확실하게 하였다.

    인내천 제창과 더불어 천도교는 처음으로 교헌을 만들고 세계종교의 체제를 갖추어 나갔다. 은도시대의 암울했던 동학체제를 청산하고 현명시대의 천도교를 세상에 알린 것이다. 선천종교의 신불에 대한 경배와 마찬가지로 후천종교의 인내천을 내세워 천인합일 사상의 사회적 실현을 촉구하였다.

    20세기 초의 한민족은 외세에 의해 나라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그 혹독한 식민지배속에서 인내천주의는 사람, 민족, 국가의 자존과 보호, 곧 보국안민을 주장한 것이다. 독자성을 인정, 유지시키는 상호관계의 정당성을 선포하고 그의 쟁취를 위한 항쟁을 지속케 했다. 시천주와 사인여천의 위력을 과시한 것이다.

    Ⅲ. 갑오혁명과 기미운동

    동학ㆍ천도교의 시천주/사인여천/인내천 민주사상을 기반으로 갑오혁명과 기미운동은 마침내 근대국가의 건설과 자주독립 국가의 유지발전을 천하에 외친 것이다. 비록 양대 풀뿌리 궐기가 계획한 목적을 당장은 전부 달성하지 못했으나 민족, 국가와 세계에 널리 알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엄격한 왕도정치와 계급사회에서 하찮은 대중이 한데 뭉쳐 봉기한 갑오개혁, 그리고 악독한 식민지배와 차별속에서 모든 민족이 함께 분기한 기미운동은 분명 한민족의 넋이 살아있다는것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천도사상/윤리/주의를 확실하게 천명한 한민족의 일대 거사였다.

    1. 동학농민혁명

    19세기 말 갑오년 1894년 무렵에 조선왕조는 국내외적인 변화와 압력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런 와중에서 불평등 사회의 밑바닥을 헤매던 백성들이 북받치는 분노의 기치를 든 것이 동학농민혁명이다. 여기에는 제폭구민, 척양척왜, 광제창생, 보국안민의 풀뿌리 민주정신이 궐기의 기반이 되었다.

    동학은 최수운의 참형이후 최해월의 계승, 확대에 따라 교조신원운동이 계속 일어났고 지배계층의 가렴주구와 폭정에 대한 크고 작은 민중봉기도 끊이질 않았다. 이때를 당하여 동학인/농민이 합동 분기하여 인권과 자유, 민주와 정의를 외치고 외세배격과 폐정쇄신을 요청한 것이다. 동학 개벽사상이 뒷받침되어 근대 국가건설을 지향한 포효였다.

    이러한 한국 역사상 최대의 맨주먹 대중봉기는 1년만에 조정과 외세의 무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민초들의 인권존중과 건전한 국가사회에 대한 열정은 계속되었지만 주변열강까지 가세하여 갑오의 꿈은 일단 깨지고 말았다. 훗날을 기약하고 낮은곳으로 숨은 것이다.

    2. 기미독립운동

    갑오혁명이후 갖은 탄압 속에 짓밟힌 동학사상은 손의암이 세계대세를 파악한 외유 수년 동안에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거쳤다.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 하고 일제의 강제병탄에 저항하는 실력을 차츰 키워간 것이다. 그 결과 1910년대 천도교의 인적, 물적 실체는 세계 종교의 공인과 함께 국권회복도 획책할만 했다.

    마침내 1919년에 조선의 독립국임과 자주민임을 세계만방에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와 2.8 일본유학생 활동에 이어 각 종교가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화를 원칙으로 하는 민족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천도교의 조직과 자금을 주축으로 진행된 역사적 쾌거였다.

    기미독립운동은 한민족의 자주와 평화정신을 세계에 알렸고 상해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졌다. 그 후 계속되는 일제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신문화운동, 사회운동으로 민족의 자존을 유지하여 2차대전 종전에 해방의 발판을 만들었다. 기미운동은 실로 인내천주위의 사회적 실현이라 할 수 있다.

    Ⅳ. 동학혁명/천도교운동의 오늘날 다시 외침

    19세기 말엽의 갑오혁명과 20세기 초기의 기미운동에 참여한 우리 선열들은 21세기를 맞은 오늘의 한국인과 천도인들에게 그때의 함성/고함으로부터 무엇을 배워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가라 할 것인가 ? 한반도에서 120년 전의 동학농민은 목숨을 걸고 봉기하였고 90년 전의 조선민족은 축적된 잠재저력으로 독립선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의 과제들이 아직도 한반도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100년전후의 조상들(동학인/농민/천도인/한국인)은 지금 후손들을 향하여 다시 무엇이라 외칠지 그 성령들의 염원을 우리는 이신환성의 자세에서 경건하게 경청해야 할 것이다.

    1. 한민족을 향하여

    1) 한반도의 통합

    갑오와 기미의 절규는 모두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인간, 민족, 국가를 존중하고 보존하자는 필사적 주장/저항/선언이었다. 그 바탕을 이룬것이 바로 한국인/한민족이고 동학ㆍ천도교의 이념이었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이러한 소원은 성취되지 않은채 분단된 두 개의 국가체제에서 반세기 이상을 서로 적대시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지구상 최후의 민족비극 속에서 어느 면에서는 서로 간에 타민족만도 못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간다. 선열들이 크게 통탄할일이고 우리 스스로도 몹시 부끄럽고 매우 불편하다.

    한반도의 통일은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분단기간이 길고 남북의 긴장이 정도를 지나치다보니, 특히 북한 통치체제의 반시대적 상황전개에 실망한 어떤 한국인은 아예 영구결별을 생각하나 이는 안될 말이다. 바야흐로 세계가 통합되고 민족의 개념이 바뀌어가는 추세이지만 그럴수록 우리 한민족은 단일화로 통합해야 한다. 우리는 매우 우수한 민족이고 후천개벽의 발상지인지라 "십이제국 다버리고 아국운수 먼저한다"는 말씀처럼 세계중심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마음대로 통일할 수 있는 현재의 여건이 아니다. 한국과 천도교 모두 통일을 주관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인내천을 말해봐야 주변 열강이 들을 줄 모르고 한반도의 세력권 조차도 마이동풍이다. 그렇지만 지난 혁명과 운동이 열광의 고함을 쳤듯이 우리 한반도의 인권은 존중되고 민족은 외적 압력 없이 정의로운 건전사회를 만들어 가야한다. 조속히 통일하라는 조상들의 함성이 귀에 쟁쟁하다.

    2) 세계평화에 기여

    한반도는 해방이후 민주, 공산의 양대 세계대세에 휘몰려 타의적인 외압과 자의적인 내분의 결과로 남북이 갈라져 서로 다른 블록에 들어갔다. 그 뒤 민족 간의 전쟁을 치르며 각각의 정치, 경제, 사회를 형성해왔다. 근래에 이르러 북한은 고립적인 노선을 견지, 세계의 눈총을 받는가 하면 남한은 개방 한 가운데 그런대로 선진 녹색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전체는 여전히 대립과 전쟁위협이 상존하는 지역에 속한다.

    남한은 그동안 정치,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킨 모범국가로 국제적인 칭찬을 받고 있다. 물론 대내적인 정치의 후진성과 경제의 양극화 문제가 없지 않으나 평화를 추구하는 세계대열에 끼어 있다. 동족간에 평화유지도 못하고 있으나 포괄적인 세계평화에 적극 참여해야할 책임이 있는 국가가 되었다. 요즈음 불고 있는 재스민혁명의 진척상황과 함께 중국,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평화유지에도 한몫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위상이다.

    100년 전후에 한반도에서 일어난 세기적인 양대 함성은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역내외의 평등한 관계유지와 평화조성에 기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이러닉하게 우리 자체가 반평화적인 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통합은 역시 세계평화의 선결과제인 점을 다시 깨닫게 된다.

    3) 지상천국의 지향

    동학ㆍ천도교의 최후목적은 지상천국 건설이다. 이는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의 궁극 목표이기도 하다. 이 지구상에 지상천국을 조성하는 것이 바로 동경과 희망이다. 한국인은 남북을 통일하고 세계평화에 협력하여 지상에 천국을 건립하는 과정에 참여해야한다.

    선천종교는 생시천국이 아닌 사후천국을 목표로 삼는다. 생시천국의 현실적 압력보다는 사후천국의 암묵적 제시가 신앙/선교상 안전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후천종교가 지향하는 지상천국은 이신환성과 성령출세의 신앙/수련을 철저하게 하는 사실적 목표여서 매우 적절하다. 개인 백년의 객관성을 중시하면서 전체 영년의 절대성도 강조하여 지상에서의 성취를 지고선으로 삼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인에게 갑오/기미의 조상들은 지상천국에 대하여 올바로 인식하라고 다시 외치고 있다. 남북과 세계가 화합하면 그것이 바로 지상천국을 지향하는 절차라고 역설한다. 스스로가 이루지 못한 혁명/운동의 소원인 지상천국의 길로 계속 매진할 것을 간청하고 있다.

    2. 천도인을 향하여

    1) 지극한 쇠운을 청산하라

    동학 45년(1860-1905)은 좌도난정/혹세무민하는 동비집단으로 갖은 탄압과 감시속에서 지내왔다. 안으로는 정쟁과 수탈이 자행되고 밖으로는 외래문물과 식민의 마수가 뻗치는 가운데 동학의 신인간/신세계 주창은 혹독한 정치, 사회, 사상의 저항에 처절하게 부딪혀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갑오혁명으로 수십만의 동학농민이 살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어 후천개벽의 사상과 활동이 연속적인 위기/쇠운을 맞은 것이다.

    그러다가 천도교시대의 초기에는 신앙의 자유가 일단 주어져 교세는 확대되고 3.1운동 때는 수백만 교도와 거대한 자금력까지 견지하게 되었다. 선천종교가 도합 몇십만 내외이던 그 당시에 천도교는 한반도 최대의 종교집단으로 성장하여 비록 일제의 탄압속일망정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민족계도에도 앞장설 수 있었다.

    그 후 일제 패망시까지 천도교는 극심한 식민 질곡에서 헤매었고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이어진 남북분단과 이념대립으로 두 개의 정부수립, 6.25사변의 비극을 겪으면서, 또 외래사조와 서구문명의 쓰나미로 말미암아 한반도 전통사상을 바탕으로 한 천도교의 상대적 쇠퇴는 불가피한 정황으로 다가왔다.

    특히 남한에서 경험한 포덕100년(1959) 전후의 독재정치와 4.19 및 5.16, 경제개발, 그리고 북한의 종교말살과 피난민의 남하 등은 천도교를 혼란에 빠지게 하여 신앙조직보다는 사회단체화하는 세속적 성향으로 몰고 갔다. 이렇게 하여 천도교는 5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상과 등진채 불안정/비정상의 비종교적 악순환을 반복하여 교인수는 줄고, 또 줄어 수십만이 수만, 수만은 다시 수천으로 급감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이다.

    이러한 부실과 쇠운의 지속에도 불구하고 교단, 특히 중앙총부의 수뇌부 구성과 원주직 배치 양상에는 추호의 변화조짐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쇠운연장만을 조장하고 있다. 비현실적인 교헌상의 대의원제도 하에서 아직도 표모으기 위한 각종음모와 조작이 횡행하여 참으로 창피하고 죄송스럽다. 이에 대한 천도교 주인인 전체교인 역시 말로만 탄식, 불평하고 구체적인 일대변혁[大機一轉]의 조직과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동학혁명기념이나 기미운동 100주년사업에서 들러리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실상이다. 참으로 통탄스럽다.

    갑오/기미의 선열들과 그때 동학/천도교의 위력은 오늘 다시 커다란 함성을 지르고 있다. - 아직도 남아있는 기특하고 자랑스런 천도인 후진들아 ! 이제는 그만 쇠운을 청산하라. 지긋지긋하지도 않는가. 다시 개벽하라고 다시 외치노니 이 좋아진 세상에 시천주, 사인여천, 인내천을 과감히 실현해보라. 그러하기 위해 먼저 총부 경영부터 개벽해야 한다. 456은 789의 과오를 탓하면서 눈치만 보지 말고 시대적 책임감을 통감하라. 오직 실천뿐이다. - (이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졸저 "총부개벽 151", 2010간행 참조)

    2) 후천종교의 기반을 구축하라

    최수운의 무극대도는 후천 5만년 이어갈 고불문 금불문의 개벽사상/천도이다. 바로 선천시대를 지탱해온 물질개벽과는 다르게 후천세계의 모습을 새롭게 열어가는 정신개벽의 법도이다. 이제 겨우 150년 지난 아주 초기단계의 신생종교에 불과하다.

    선천종교가 지배하는 현재의 인간세계는 이미 지난날의 사상과 방식으로 고착되어 있다. 선천의 물질중시/기준에 따라 인류문명이 개발되어 왔고 그에 만족하면서 그의 개량, 지속에만 집중하는 경향이다. 이에 후천종교인 정신기준의 신질서는 선후천간의 기준차이에서 오는 과정상의 괴리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천도인들은 지금 참으로 할 일이 많다. 1년, 10년 안에 성과가 나타나는 일이 아니라 100년, 1000년 후의 일을 지금부터 준비해야하는 상황이다. 후천종교의 기반 구축을 위해 각 시대마다 해야 할 일을 그때 꼭 해야 하는, 그런 성격의 일이다. 오늘의 천도인은 포덕150년대 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포덕100년대에 들어 지난 50년간 천도인에게 주어진 이런 일들이 올바로 추진되지 않아 지금 벼랑 끝에 서있다.

    이 시점에서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극대도의 교리와 지난 역사에 관한 손질이라 할 수 있다. 최수운 시대의 말과 글로 쓰여진 난해의 경전을 아직 그대로 읽기만 하고 주문의 뜻도 확실치 않은채 그저 외우기만 한다. 또 150년의 역사기록이 올바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 그 정체성마저 모호해지고 최근에는 교리, 교사의 체계화 인력과 재원능력도 매우 한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곡이 아닌 오류의 반복(The Blind leading the Blind)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또 후천종교의 독창성/차별성을 구현하는 신앙체계의 정립에 있어 새로운 종교체계와 의식의 제도화도 매우 긴요하다. 오늘의 천도교는 손의암 시대에 처음 제정한 원초적 종교제도와 의식, 그리고 수행방식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도 선천종교와 유사한 것이 많고 시대변천에 영합하는 독자적 후천양식을 개발하지 못한 상태이다. 하드웨어 측면의 신앙체계와 법규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쪽의 인간관계와 문화예술 부문도 광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시천주사상은 선천종교의 일원화 경향에 비하여 다양화의 포용성을 갖는다. 손의암의 삼화일목과 요즈음 비빔밥의 세계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단일민족을 자랑하다가 현재는 다문화가족의 확대현상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다. 한민족의 거주지역과 한류의 외연확산도 커다란 관심거리이다. 새로운 것을 표방하는 후천개벽의 천도교는 점차 새것에 관심을 갖는 선천 지배세계를 향하여 무극대도 전파의 저력을 함양해야 한다.

    갑오/기미의 지난 에너지는 현재 우리 천도인들에게 후천종교의 기반을 튼튼히 닦으라고 다그친다. 시간이 많이 걸릴 일이다. 나의 당대에는 볼 수 없다고만 하지 말고 주어진 소임을 다한 후 그 결과는 성령으로 장생, 만끽하는 것이라고 다시금 깨우쳐준다. 중앙총부가 흐트러져있는 모든 자원의 구슬을 한줄에 꿰어 순차적으로 통합해가는 것이 순리이다.

    3) 천도교세계화를 추진하라

    천도교는 세계종교화를 목표로 한다. 손의암이 그렇게 설파했고 최수운도 인간→민족→국가→세계화의 포덕천하 과정을 언급했다. 최해월 역시 최수운의 역정을 좇아 손의암의 세계종교 확신을 명확히 하게했다. 그러나 갑오혁명으로 인한 동학의 탄압지속과 기미운동 이후의 내외압력으로 천도교의 세계화는 생각도 못한 채 지내왔다. 그동안 그런 대책을 논의할 겨를도 없이 현상유지조차 어렵게 만든 것이다.

    후천 5만년의 천도교는 모름지기 세계화를 당장 기획해야 한다. 장기적인 종교목표와 사명을 분명히 하고 세부적으로 추진해가면 된다. 당장 국내에서도 명맥을 이어가기가 어려운데 세계화란 당치도 않다고 절망할 필요가 없다.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쇠운을 청산하고 후천종교의 기초를 닦으면서 세계화를 병행해가야 한다.

    오늘의 천도인은 세계화를 꿈꾸는 것이 마땅하다. 쇠운을 성운으로 바꾸는 전기만 마련하면 현재는 천도인이 아니지만 세계화에는 합류할 한국인의 잠재력을 믿고 그를 발굴, 활용해야 한다. 동학ㆍ천도교는 한국의 오랜 전통사상에 뿌리를 두고 창도, 발전해온 까닭에 그의 교리와 신앙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공감영역을 상당히 갖고 있다. 게다가 근래에는 한국의 경제성장으로 일류국가 지향의 자신감까지 강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이라는 확신과 의지력까지 생겼다. 인내천 바람이 불기만 하면 월드컵 현상의 재현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때문에 냇가에서 낚시질만 하려하지 말고 지구를 향해 투망질도 해야 한다는 말을 하게된다.

    세계화 기획, 추진에는 기반구축과 동시에 수행해야 할 일들이 많다. 예를 들면 경전/교리/교사 정비에 있어 주요 외국어 번역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도 한국어/한문의 외국어 직역이 아니라 번역 대상의 언어가 모국어인 전문가가 충분한 수련을 거쳐 후천개벽 사상을 터득한 상태에서 번역케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상황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겠으나 일단 어느 궤도에 오를 경우 새로운 것을 탐구하려는 세계의 학자/종교가들은 한국 천도교를 향해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도인이 아닌 한국인/세계인도 포덕천하에 앞장서게 돼야 지상천국의 목표달성을 기대할 수 있다. IT(정보), CT(문화), BT(생명) 시대에 천도교의 세계화는 그 성과가 급속히 나타날 수도 있다는 신념을 갖고 혁명/운동에 목숨을 바친 선열들 성령의 함성에 더욱 가까이 가야한다. 남의일이 아니고 바로 나, 우리 모두의 일이며 먼 훗날이 아닌 당장 오늘 착수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이에 관련된 사항은 졸저 "천도교의 세계화, 2007" 참조)

    Ⅴ. 결언

    갑오동학농민혁명과 기미3.1독립운동은 동학ㆍ천도교의 시천주사상, 사인여천윤리, 인내천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평등인간, 공정사회, 근대국가, 자주민족 및 평화세계를 열망, 절규한 한국인의 시대적 거사였다. 갑오와 기미의 함성은 오늘의 한국인/천도인에게 그때의 포부와 의기를 이어받아 한반도의 통일과 선진화를 이룩하라고 채찍질 한다. 나아가 세계평화와 지상천국 건설에도 기여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특히 천도인의 진정한 참회와 분발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그 동안에 저지른 난법자행을 사실대로 되돌아보고 이제는 한울님 뜻과 스승님 가르침 따라 쇠운을 종식시키라고 타이른다. 그러므로 후천 5만년의 초기를 살아가는 천도인은 후천 종교체계의 기반을 구축하는데 역점을 두고 세계적인 천도교로 발전시켜 나갈 기획도 수립,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

    오늘의 처참한 천도교에 실망하지 말고 아직껏 남아있는 질경이 같은 천도인 모두가 무극대도의 주인이란 종자의식을 갖고 선열들의 애절할 만큼 절실했던 함성에 귀를 기울여 주어진 소명을 점진적으로 실천해가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진정한 실력을 키워가면서 3년이 아니라 10년, 50년을 내다보고 100년 계획을 지금부터 세워보자. 천도인 이웃동네에는 한국인이 있고 저 멀리 바다건너에는 사인여천/인내천을 배우고자하는 세계인이 기다리고 있다. 시천주의 개벽사상은 5만년 이어갈 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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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인박사(경영학) 약력

    출신학교 :

    ○ 서울대학교농과대학
    ○ 뉴질랜드 매씨대대학원
    ○ 하버드경영대학원
    ○ 건국대대학원

    주요경력 :

    천도교 - ○ 도정/중일변포럼대표/종학대학원장 (전)
    ○ 현도10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장 (전)
    ○ 법사/선도사 (현)
    ※ 3대째 교인(조부:갑오혁명/부친:기미운동참여)

    일 반 - ○ 캘리포니아주립대교수/‘서울대초빙교수 (전)
    ○ 세계은행아시아고문/유엔식량농업기구유통위원 (전)
    ○ 미국곡물협회한국회장/미국농무성시장개발고문 (전)
    ○ 성천문화재단상임이사/농림부정책자문위원 (전)
    ○ 한국자조금연구원이사장/한국파생상품선물연구회고문 (현)
    ○ 한ㆍ뉴질랜드친선협회장/밝고힘찬나라운동집행위원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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